'타임'은 "올해의 대표적 흐름인 '온라인 쇼핑'과 '닷컴 열풍'(Dot Com Mania)에 맞는 특정 인물이나 개념을 찾은 결과 자연스럽게 베조스 회장으로 압축됐다"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그를 '전자상거래의 왕'으로 치켜세운 '타임'은 "그의 야심차고 확장 지향적인 벤처정신이 인류 미래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했다"라고 평가했다.
▼디지털 리더 139인의 스케치▼
베조스는 '디지털 경제를 움직이는 139인의 비전과 전략'을 갈무리한 신간 '밀레니엄 리더'(이선기 지음/ 청림출판 펴냄)에도 등장한다. 제2부 베이비 모굴스(Baby Moguls), 인터넷의 영파워편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책방 주인' 베조스는 "샘 월튼이 월마트 체인으로 12년간 번 돈을 단 3년 만에 거머쥐었다."
그렇다고 베조스의 삶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17세의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아직까지도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베조스라는 성도 어머니가 미구엘 베조스와 재혼하면서 뒤늦게 얻은 것이다. 그의 양아버지는 10대 시절 쿠바로부터 도망쳐 온 석유 엔지니어였다.
그의 아마존컴 설립 비화는 더욱 극적이다. 뱅커스 트러스트의 최연소 부사장으로, 유명 헤지펀드 업체의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리던 베조스는 막상 사표는 던졌지만 "이삿짐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 차 뒷좌석에 트렁크 하나를 달랑 던져 놓고, 골든 리트리버종 애견을 옆에 태운 채 서부로 차를 몰 뿐이었다. 그리고 오로지 인터넷과 서적 유통을 결합시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밀레니엄 리더'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참 쉽게 읽힌다. 디지털 경제, 혹은 인터넷 비즈니스를 다룬 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무슨무슨 법칙, 무슨무슨 지침, 혹은 원칙 등을 열거하면서, 마치 창업 강의를 하듯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얘기들을 늘어놓기 일쑤다. '밀레니엄 리더'는 그렇지 않다. 마치 짤막짤막한 꽁트나 단편을 읽는 것처럼 다채롭고 흥미롭다. 139명이나 되는 '리더'들의 이야기를 썼지만 그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거나 특별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그만큼 인간적이고, 따라서 '아,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속도감 있는 문체도 이 책의 미덕 중 하나. 세 줄 이상 이어지는 문장이 거의 없다. 요점 정리하듯 날렵한 문장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다. 그만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삼투력(渗透力)도 높아진다. 스타카토식 문체라고나 할까. 가령 이런 문장들을 보자.
IT업계 CEO 중 'Mr. 인터넷'을 뽑는다면 시스코 사장인 존 체임버스가 단연 일등 후보감이다. 세계 각국을 돌며 인터넷 대중화와 디지털 경제 시대를 설파하는 체임버스의 모습은 마치 월드와이드웹에서 파견 나온 친선대사처럼 보인다(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회장편 중).
'잭 비 님블(Jack be nimble)'. 데이터채널의 CEO 데이비드 폴의 별명이다. 우리말로 하면 '빠른 놈'쯤 된다. 1994년 스프라이(Spry)라는 노벨 넷웨어 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폴은 웹이 등장하자마자 브라우저와 가장 빨리 연결시켜 주는 프로그램 '인터넷 인 어 박스'(Internet in a Box)를 출시해 놀라운 민첩성을 증명했다(데이터채널의 데이비드 폴 회장편 중).
'롭 글레이서는 벙어리였던 웹이 말하고 노래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이다. 그는 웹에 연속적으로 흐르는 오디오를 도입함으로써 소리의 장벽을 허물었다'(리얼네트워크스의 롭 글레이서 회장편 중).
지은이는 '이제는' '이러한' '누구인지' 등과 같이 쓰지 않는다. '이젠' '이런' '누군지' 등으로 줄여 쓴다. 글읽기의 속도를 높이려는 의도다. 이러한 문체는, 점잖은 논문이나 평론에서는 금기시되는 방식이지만, 적어도 이 책에 관한 한 그 성격이나 내용과 썩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디지털 경제를 움직이는 139인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400쪽 남짓 되는 분량에 그 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담자면 가능한 한 군더더기를 빼야만 한다. 그 인물들의 고갱이만을 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밀레니엄 리더'는 다른 이(e)-비즈니스 관련 책들인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청림출판 펴냄)나 '손정의 21세기 경영전략'(소담출판사 펴냄) '아마존의 성공비밀'(리드북 펴냄) 등과 뚜렷이 구별된다. 다른 책들이 한 사람의 전모(全貌)나 전략, 생각 따위를 꼼꼼히 드러낸 세밀화라면 '밀레니엄 리더'는 139편의 스케치 모음, 혹은 캐리커처 모음에 해당한다. 대부분 이름조차 낯선 이들 '리더'의 다양한 일화와 면모를 죽 읽어가다 보면 때로는 어느 일화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각 인물들의 개성이나 이력, 비전이 2~3쪽에 압축된 만큼 그로부터 특정 인물의 전모나 전략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책이 지닌 단점이고 한계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데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꼼꼼한 독법보다 죽 훑어가는 독법. 그러면서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메모하는 방식이다. 마치 짧게 지나가는 예고편처럼 툭툭 불거지는 각 인물들의 특징과 전략을, 몇 가지 공통된 줄거리나 항목으로 묶으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들 '밀레니엄 리더'가 다채롭게 펼쳐보이는 십인십색(十人十色)의 세계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체로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라는 점. 디지털 경제에서 '선점'(先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디나우, 브로드캐스트콤, 아마존콤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한 이른바 '카테고리 메이커'(Category Maker)였기 때문에 그 분야의 '게임의 법칙'도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 이른바 '인터넷 타임'의 1년은 현실 세계의 5년, 혹은 7년과 맞먹는 긴 시간이기 때문에,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먼저 출발한 기업은 그만큼 큰 성공 가능성을 갖게 된다.
둘째, 발상의 전환을 통해 남과 다른 아이디어를 찾아냈다는 점. 예컨대 인포스페이스의 네이빈 제인은 치열한 포털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포털업체에 정보를 대는 이른바 '포털의 포털' 전략을 선택했다. 프라이스라인의 제이 워커는 일반적인 경매 방식을 뒤집은 경우.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원하는 가격을 먼저 부르는 '역(逆)경매 방식'을 창안했다.
셋째,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스포츠맨십이 몸에 밴 스포츠광들이다. 루퍼트 머독이나 피터 드러커처럼 이미 고령인 경우를 논외로 친다면 빌 게이츠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이들은 그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요트를 타거나, 조깅을 하거나, 아이스하키를 즐긴다. 그 덕택에 이들은 건강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경쟁도, 더없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비겁하지는 않다. 몸에 밴 스포츠맨십 덕택일 것이다.
그밖에도 이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부터 기업가 정신, 혹은 기질을 타고났다는 점 ▲대부분 못말리는 개성파라는 점에서도 닮은 꼴이다. 이러한 몇 가지 항목을 '디지털 기업가'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김상현<동아닷컴 기자>dot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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