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자연 인간]환경의 복수/"섬이 가라앉는다"

  • 입력 2000년 3월 31일 20시 52분


《2080년 어느날 서울. 특수장치로 깨끗한 산소가 공급되는 캡슐에서 일어난 A씨는 벽에 걸린 모니터로 오늘의 오염정보를 체크했다. 외출을 위해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고 가스마스크를 챙기면서 A씨는 인도대륙 일부가 또다시 물에 잠겨 추가로 2억명의 환경난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가상 시나리오지만 현재와 같은 환경파괴가 지속된다면 이런 일이 현실로 닥칠 것이라는 환경학자들의 경고다. 동아일보는 창간 80주년을 맞아 환경정의시민연대와 공동으로 지구환경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제1부에서 환경 위기의 현장을 찾아보고 2부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위한 녹색 대안을 제시한다.》

“바닷물이 넘쳐 가슴을 졸인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적도 근처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 최근 아이오나타나 아이오나타나 총리가 뉴질랜드 등 이웃 나라에 1만여명의 자국민 전체를 이민자로 받아달라고 호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나라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 나라 전체가 바닷물에 잠길 위험에 처해 있다는 위기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3월16∼20일 피지의 수도 수바를 경유, 이 나라의 수도 푸나푸티를 찾았다. 투발루는 한주일에 2편밖에 없는 30인승 수바∼푸나푸티 항공편을 이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고립돼 있다.

▼온난화로 해수면 상승▼

기다란 바나나 모양의 푸나푸티는 섬 주변 어느 곳에서나 스노클링과 스킨스쿠버를 즐길 수 있는 연둣빛의 환상적인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길이 약 10㎞에 폭은 넓어야 500∼600m, 좁은 곳은 50∼100m. 섬의 평균 높이는 해발2m 가량에 불과했다.

만조 때인 오후 4시경에는 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방파제가 없으면 아름다운 빛깔을 띠던 바닷물이 금방이라도 넘실대며 섬 안쪽으로 침입할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올 들어서만 3차례에 걸쳐 인구 2700여명에 불과한 푸나푸티의 여러 지역이 바닷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투발루 기상청에 따르면 1월21∼22일, 2월19∼20일 지대가 낮은 비행장 및 근처 기상청 건물 일대가 침수됐다. 또 2월22일에는 강한 토네이도(회오리바람)로 인해 발생한 해일이 섬 전체를 덮칠 것 같아 ‘낙천적인’ 이곳 주민들도 불안에 떨었다.

푸나푸티에는 미국의 해양 및 대기관측소(www.ngdc.noaa.gov)와 호주 플린더대 조수관측소(www.ntf.flinders.edu.au)의 과학자들이 조수(潮水)변화 등을 모니터하고 있다. 3월 최고 해수면은 3.19m였다. 푸나푸티의 집들은 모두 1, 2층 건물이다. 잦은 바닷물 침수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 지상에서 50㎝ 가량 높게 지어진 것이 눈길을 끌었다.

푸나푸티는 20여개의 작은 부속 산호섬들과 함께 거대한 라군(산호섬에 둘러싸인 해수면)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름없는 어느 산호섬에는 지구 온난화의 위기를 상징하듯 몇그루의 코코넛나무가 곧 쓰러질 듯 서 있었다. 투발루는 푸나푸티와 유사한 9개의 산호섬 군(群)으로 구성돼 있다. 섬을 모두 방문하려면 3주일이 걸릴 만큼 서로 떨어져 있는데 모두 푸나푸티와 비슷한 처지다.

▼만조때면 아슬 아슬▼

바닷물이 곧 집어삼킬 듯한 이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푸나푸티의 경우 연중 강수량이 97년 4119.3㎜, 98년 3898.7㎜에서 지난해 2408.7㎜로 급감했다. 강수량의 부족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때문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지난해 9월 해수담수화 설비를 푸나푸티에 설치, 식수난을 그럭저럭 해결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바닷물 침수사례는 일상적인 일인지 주민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이곳의 유일한 호텔인 바이아쿠라기의 여지배인 멤마 투이는 “바닷물은 원래 높아졌다 내려갔다 하는 것 아니냐”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또 일부 주민은 섬에 고여 있는 바닷물에서 태평스럽게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섬이 잠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한 주민은 “하느님이 보호할 것”이라고 대꾸했다.

▼뉴질랜드 피지로 이민 붐▼

그러나 나라 전체가 없어질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 정부 당국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투발루 환경자원부 관계자는 “주민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예기치 않은 폭풍우 및 가뭄 등에 둔감하지만 정부로서는 집단이민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이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주민들이 투발루를 떠나 인근 국가로 피신했다. 투발루 정부에 따르면 뉴질랜드로 1300여명, 피지로 1000여명, 호주로 500여명이 빠져 나갔다. 한두사람씩 섬을 떠나서인지 외로운 작은 섬은 바람앞의 등불처럼 더욱 아슬아슬해 보인다.

투발루는 국제사회에 지구온난화 및 해수면 상승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지만 엄청난 온실가스를 내뿜는 강대국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아이오나타나총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투발루가 첫 타깃일뿐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며 국제적인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2030년엔 해수면 최고 25cm 높아질듯▼

호주 연방과학연구소(CSIRO)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세계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5∼25㎝ 높아지고 2100년에는 대략 거의 50㎝ 높아질 전망이다. 또 정부간 기후조사위원회(IPCC)의 기후모델에 의하면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금보다 1∼3.5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100년 동안에도 벌써 0.3∼0.6도 올랐다.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선진국 기후 및 환경 전문가들이 양자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계량화한 명백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해변의 특징, 조류의 변화, 육지 자체의 움직임 등 다양한 변수가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SIRO의 크리스 미첼 박사는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바다의 온도가 상승하면 물이 팽창하고 남극 등의 빙하가 녹기 때문이다.

해수면 상승은 현재로선 해변 침식, 또는 바닷물에 의한 담수 피해 등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IPCC 존 휴턴 박사는 저서 ‘글로벌 워밍’에서 “인류의 절반이 바다와 인접한 곳에 살고 있어 해수면 상승은 인류에게 심각한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해발 1∼3m의 방글라데시 델타 지역을 비롯해 이집트 나일강 유역, 네덜란드, 인도양의 몰디브와 남태평양의 마셜군도 키리바시 쿡제도 등이 ‘발등의 불’로 떠올랐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환경정의시민연대 자문위원▼

김재현(건국대 산림자원학 교수) 김정인(중앙대 산업경제학 교수) 김창섭(에너지관리공단 기후변화협약대책반 정책팀장) 서왕진(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최중기(인하대 해양학 교수) 추장민(베이징대 환경과학센터 연구원) 홍욱희(세민환경연구소장) 홍종호(한양대 경제학과 교수)

<이상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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