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의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는 TV드라마 ‘허준’. 이번주엔 모든 의관들이 꺼리는 혜민서 근무가 “할만 하다”는 허준의 말에 어의영감이 이해할 수 없어하는 대목이 나왔다.
허준이 실제 혜민서에서 근무했는지는 학계의 논란거리이지만 그가 지은 동의보감에는 출세길에 매달리기 보다 백성과 아픔을 같이 한다는 허준의 철학이 잘 나타나 있다.
동의보감엔 450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처방이 수록돼 있다. 조선 중기 80여 종의 주요 의서들을 망라해 실용적 에센스 만을 모아 정교한 체계를 이룬 당대의 의학백과사전. 첫 머리엔 허준의 질병과 삶에 대한 철학이 나타나 있는데 바로 ‘마음을 비우면 도와 합치될 것이며 도로써 치료한다’(虛心合道 以道療病)는 것.
허준이 30세에 청와대 주치의 격인 내의원 어의가 돼 선조와 광해군 양대에 걸쳐 40여년 동안 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은 마음을 비우고 명예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어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임금과 왕비 왕세자 등의 사망과 질병에 따라 문책을 받거나 귀양받는 등 중벌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 그런데도 허준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나이인 77세(또는 70세)까지 살면서 신분을 뛰어넘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인체는 기(氣)화 혈(血)이 원활히 흘러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한방에선 인간이 욕망을 채우지 못했을 때 기가 막히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혈관이 수축돼 혈액이 잘 순환되지 않는다고 본다.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성공 여부를 떠나 막중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온몸, 특히 뇌에서 기와 혈이 잘 순환돼 건강이 보증된다.
과로로 뇌혈관이 막혀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일본 오부치 전총리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정성은 다하되 마음을 비우고 집착하지 않는’ 허준의 건강철학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훌륭한 건강술이며 처세의 도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032-651-7823
손영태(부천 명가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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