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세상스크린]배우지망생때의 시련

  • 입력 2000년 4월 24일 16시 31분


'이 세상에 기쁜꿈있으니 가득한 사랑에 비가 내리고'

통기타와 함께 이제 막 노래 한소절을 끝내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만하세요" "네?" "잘알겠으니까 그만하세요. 다음 분!" " "네(몹시 풀이 죽은 목소리로)."

1984년 KBS TV 쇼 오락프로그램인 '젊음의 행진'에서 '대학생 통기타 가수'을 모집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 가수로 시작해서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배우로 들어서는 거다'고 마음을 먹고

두 달을 강훈련한 저는 약 5초동안 노래를 부른 뒤 묵묵히 방송사를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로 좋아하던 이 프로를 안봤습니다.

"정말 혼신을 다해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이듬해인 1985년 봄 KBS11기 공채 탤런트 선발 1차 면접에서 박중훈은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배우 지망생 박중은은 여의도 KBS별관 합격자 명단에서 '박중언' '박중

운' 등 비슷한 이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의도에 사는 친구 조차도 만나기 싫었습니다.

▼낙방 쓴경험 삶엔 보약▼

이것 말고도 계속해서 몇번에 걸쳐 비슷한 경험을 한 저는 떨어짐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영화감독의 눈에 띄기위해 기름 바른 장발 올백머리에 빨간 점이 박힌 땡땡이 무늬 와이셔츠, 흰바지, '빽구두'를 신고 충무로를 하루에도 몇시간씩 미친듯이 왔다갔다를 했습니다.

한달 뒤 중요한 정보를 하나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황림 감독님이란 분이 영화 '깜보'를 준비하고 있는데 신인배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감독님은 저를 잠시 보시더니 집에서 기다리면 곧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전화기 앞에서 기린 목을 하고 1주일을 기다리다 저는 스스로 영화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영화사에서 잔심부름이라도 할테니, 영화사에 나올 수만 있게 해주십시오." 몇 달 뒤 감독님은 저의 가능성을 인정해 고맙게도 '깜보'의 주인공으로 파격 기용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 주지 않던 시절 어린 생각에 야속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꼭 될 수 있다고 항상 스스로 격려했기 때문입니다 . 또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채워짐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한편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주위에 현혹되면 '보물' 못봐▼

행복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상위 국가는 대부분 가난한 나라이고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부자 나라의 행복 만족도는 하위권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사람들은 왜 현재는 항상 슬프고, 마음은 미래에 살고, 지나서야만 과거가 행복했다는 걸 알까요? 15만원 오른 월급에 행복해 하다 돈을 많이 번 동창을 우연히 만난 뒤 갑자기 한숨짓고, 열심히 노력해 월부로 산 소형차에 가족을 태워 행복하게 여행을 떠나다 왜 문득 지나가는 벤츠에 기죽어야 할까요?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운명을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처럼 행복한 마음이 행복을 만들지 않을까요?

저의 가장 큰 행복은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야망은 갖되 현재에 감사하며 살아라'라는 가르침을 주신 한편, '그리움'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던져 주고 1년 전 야속하게 세상을 떠나신 제 아버지를 아들의 인연으로 만난 것입니다.

박중훈<영화배우> joonghoon@serom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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