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공포만화 ‘소용돌이’의 뒷표지에 적혀있는 경고문이다. ‘소용돌이’는 주목받는 일본 공포만화가 이토 준지(37)의 99년 작품. 과연 경고문을 붙여야 할만큼 기괴하기 그지없다.
‘소용돌이’의 무대는 해안가의 작은 마을. 여고생 키리에의 남자친구 아버지가 소용돌이 모양에 심취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마을엔 흉흉한 일들이 벌어진다. 여인은 소용돌이 기피증에 걸려 손가락의 지문을 잘라내고 출세하고 싶은 도공은 악령이 깃든 흙으로 도자기를 빚는다.
치기공사 출신인 이토 준지는 일본의 전설적인 공포만화가의 이름을 딴 ‘우메즈 카즈오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하며 만화계에 등단했다. 그의 만화는 등골이 오싹할만큼 섬뜩하지만 그 이전에 독창적이다. 잔인한 장면으로 공포를 유발하기보다는 한번도 꿈꿔본 적 없는 당황스런 상황을 설정해 두려움을 끌어낸다.
그는 공포를 통해 인간의 마음 속을 거울처럼 비춰낸다. ‘소용돌이’에는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연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몸을 꽈배기처럼 비비 꼬아 징그러운 뱀으로 변한 후에야 가족들에게서 벗어난다. 매사에 ‘꼬이고 뒤틀린’ 심사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가족에 대한 항의다.
과시욕에 사로잡힌 여고생은 어느날 소용돌이 모양으로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갖게 돼 유명인이 된다. 그러나 결국 온 몸의 양분을 착취하며 길어가는 머리카락 때문에 탈진해 죽는다. 허영의 대가인 셈. 질투나 분노같은 일상적 감정이 공포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피가 넘치는 장면을 보는 것보다 무섭다.
이토 준지는 99년 시공사가 낸 16권짜리 ‘미스터리 콜렉션’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그는 영화 ‘토미에’의 원작자 자격으로 99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했다. 역시 99년 일본에서 영화화됐던 ‘소용돌이’에는 영화배우 신은경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김명남기자>star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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