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크’와 ‘조이 럭 클럽’을 통해 절제된 연출력을 과시해온 웨인 왕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섹시함과 모성애를 동시에 갖춘 수전 서랜든과 할리우드의 신성 나탈리 포트먼이 모녀로 출연, 연기대결을 펼친다.
천방지축 철부지 엄마 아델(수전 서랜든)과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딸 앤(나탈리 포트먼). 미국 중동부 위스콘신주 시골에 살던 두 사람은 앤을 영화배우로 출세시키겠다는 아델의 허영심 하나로 서부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로 이사한다.
그러나 냉정한 현실앞에 아델의 서투른 허영심은 번번이 좌절을 맛보고 그때마다 상처를 받는 앤에게 엄마는 삶의 족쇄같은 존재다.
미국에서 부와 명예의 상징인 베벌리힐스는 영화속에서 이혼녀와 결손가정의 소녀에게는 더없이 누추하고 비참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아델은 부자들이 버린 가구를 주워다 쓰고 공과금을 제때 못내 전기도 끊기는 신세지만 곧 죽어도 프랑스요리에 고급구두를 찾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아델의 벤츠. 베벌리힐스 입성의 열쇠인 냥 아델이 전재산을 털어서 산 황금색 세단은 벌겋게 부풀어오른 그들 모녀의 자의식을 상징한다.
앤은 그런 엄마의 곁을 떠날 수 없다. 무책임하고 실수투성이 엄마지만 자신이 바로 그 거품같은 엄마의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 앤도 대학진학과 함께 홀로 서기를 결심하고 아델은 자존심의 상징과 같은 벤츠를 팔아 앤의 학비에 보태는 모성애를 발휘한다.
이런 류의 영화의 미덕인 최루성 안개를 끝까지 터뜨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너무 불편할 정도로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 다만 “엄마가 없다면 세상은 너무 무미건조하고, 너무 공평하고, 너무 이성적이다”라는 앤의 마지막 대사가 남기는 여운은 길다. 원제 Anywhere But Here.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