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과 한국기업 메세나협회 초청으로 방한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56)은 7일 이런 고민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저술가로 95년부터 2년간 프랑스 총리실 자문역을 지낸 석학.
그는 이날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기업과 문화예술의 연대를 위한 국제심포지엄’ 강연에서 ‘문화적 부가가치론’을 언급하며 “한국의 예술인들이 활발하게 해외로 진출해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려야 하고 이를 기업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 소르망이 이날 ‘기업과 문화예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과 이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 요약.
88올림픽 때 한국이 보여준 국위선양 방식에 대해서 아직도 아쉽게 생각한다. 당시 한국은 경제발전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기를 바랐다. 경기의 로고나 TV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한국 고유의 것보다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졌다. 이런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자신의 가치체계에 대해 대안을 심각하게 모색하고 있는 서구인들에게 ‘한국이 서구를 열심히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때문에 서구 언론인들은 현대적인 것이 아닌 것을 찾았고 결국 ‘보신탕 판매금지’ 같은 것을 보도하느라 바빴다.
한국인들은 문화의 경제적 부가가치에 대해 아직 인식이 부족하다.
경제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나라들은 모두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화적 이미지는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묘사할 수는 있다. 독일은 고품질과 기술, 프랑스는 패션과 삶의 질, 일본은 정밀과 섬세한 아름다움, 미국은 탁월한 품질과 서비스, 이탈리아는 우아한 세련미 등.
그러나 한국은 문화적 시각에서 봤을 때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프랑스 소비자가 한국상품을 사는 것은 값이 싸기 때문이지 한국제품이기 때문은 아니다. 문화적 이미지가 결여된 탓이다.
일본은 1930년대 조잡한 싸구려 상품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제품의 품질이 변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전통극단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활발한 해외공연 활동을 벌였으며 예술가와 영화 제작자들 또한 일본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일본 문화는 예술을 통해 60년대 서구에 소개됐는데 이것이 일본의 평판을 높이고 서구 소비자들에게 일본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국문화는 매우 유서 깊고 독창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과거의 문화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묘지가 아니다. 한국 현대예술의 창조력은 음악 미술 조각 비디오 영상 영화 문학 등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문화를 해외에 선양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부족하다.
기 소르망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예술가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문화적 힘을 가졌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업들도 예술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은 중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와는 다른 독창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한 명의 지도자와 독재자의 만남”이라고 평가하고 “북한은 한국과 여타 외국으로부터 돈을 끌어다 현 체제를 유지하는 데 혈안이 돼 있을 뿐 통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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