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추진돼 1년반의 산고를 겪은 이 책은 각 국의 만찬 요리법을 다룬 서적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나오는 것. 출간 뒤 유엔 본부에 납품되며 미국 등 12개국에서 판매된다. 10월24일 유엔의 날에 맞춰 올해 ‘유엔 기념 도서’로 지정될 예정이기도 하다.
이 책 출판은 지난해 초 몇몇 대사 부인들이 한국 장애아동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 ‘사랑 심기’를 도울 방안을 의논하다가 “외교관 부인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는 비장의 요리법들을 책으로 만들어 인세를 기증하자”는 의견이 나온 데서 출발했다. 이 책 한글판 인세는 ‘사랑 심기’에, 영문판 인세는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보내진다.
주한대사 부인들은 출판을 위해 진행위원회도 만들었다. 위원장은 세계적 요리학교인 프랑스의 코르동 블뢰를 나온 크리스틴 보스워스 미국 대사 부인이 맡았다. 이밖에 이브 트레자 이탈리아 대사 부인, 라일라 데라 이집트 대사 부인 등 요리에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진 대사 부인들이 위원으로 가세했다.
각 국 대사 부인들은 자비를 들여 각각 ‘8인용 만찬’을 각 대사관저에서 준비했다. 제작 지원에 나선 에델만 코리아와 협의를 거쳐 그 나라의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색깔과 문양을 담고 있는 식탁보 그릇 물병 등 소도구 선택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게 만찬 요리는 많은 해프닝과 엄선 과정을 거쳐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다.
돈 퍼거슨 뉴질랜드 대사 부인은 달걀 흰자 거품이 듬뿍 일어나 한눈에 군침이 돌게 하는 디저트인 ‘수플레’를 선보였다. 그러나 수플레는 오븐 밖으로 나온 뒤 1분도 채 안돼 거품이 가라앉는 요리. 퍼거슨 부인은 촬영팀을 위해 몇 번이고 수플레를 만들어 번개 같이 식탁으로 옮겨야 했다.
촬영을 맡은 ‘스튜디오 416’ 대표 김영수씨는 “원래 요리 촬영은 맛깔스러운 분위기를 위해 몇가지 ‘트릭’이 쓰일 수밖에 없지만 대사 부인들이 워낙 ‘있는 그대로’ 촬영하기를 원해 최소한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쓴 ‘트릭’은 맥주에 거품을 만들기 위해 소금을 뿌리거나, 붉은 빛 도는 음식에 레드와인을 뿌린 정도.
대사 본인들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니콜 로포틴 루마니아 대사는 70도짜리 전통 자두술을 선보였다. 독신인 아이오니스 바바스 그리스 대사는 할머니가 아테네에서 식당 4군데를 운영하는 터라 고기 찜요리 ‘가지 무사카’를 선보였고, 페르난두 라모스 마차도 포르투갈 대사는 침이 입안에 가득 고이게 만드는 대구 요리를 식탁에 올렸다. 그러나 아시아계의 한 대사는 부인이 애써 구한 바나나를 영문도 모르고 먹어버려 며칠 동안 부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사는 “촬영 2주전부터 아내가 계속 연습용 만찬을 시식해 보라며 권해 부른 배를 안고 자곤 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진통 끝에 나온 만찬 요리들이 ‘벨로테 소스의 연어구이’(캐나다) ‘아몬드를 곁들인 송어구이’(폴란드) ‘와인과 자두를 곁들인 송아지 요리’(이스라엘) 등 듣기만 해도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가는 진미(珍味)들.
보스워스 대사 부인은 이같은 67종의 요리를 올해 3개월간 직접 만들어 보며 요리 실력을 가다듬는 기회로 삼았다.그녀는 “외교관들은 만찬 초대를 통해서도 외교 영역을 넓혀나간다”며 “정성들여 식탁을 차리는 부인들의 마음은 자국을 최대한 소개하려는 외교관의 마음과도 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책이 나오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부인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부에게 꼭 선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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