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결정의 원인은 놀랍게도 왜색이나 폭력성, 선정성이 아니다. 당국에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비디오 게임산업의 취약성이다. 비디오 게임 분야는 일본이 너무나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섣불리 개방했다가는 국내산업이 모두 고사할 것이라는 논리다.
일본이 세계 비디오 게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술적인 수준도 물론 세계 최정상이다. 하지만 일본 비디오 게임이 들어온다고 국내산업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내엔 비디오 게임산업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비디오 게임기의 대표격인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출시된 국산 게임은 아직 하나도 없다. 다른 기종을 통틀어봐도 비디오 게임은 전체 게임 중 0.1%도 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기술적인 것이 아닌 다른 데 있다. 다른 일본 문화와 마찬가지로 비디오 게임 역시 음성적으로 유통돼 왔다. 대부분 용산 등지에서 파는 불법 복제품으로 게임을 즐겼고, 정품이라도 정식 수입된 것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 비디오 게임이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현재 국내에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은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생겨날 시장을 일본 게임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논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게임기는 수입을 허용하면서 소프트웨어만 막는다면 많지도 않은 미국 게임만 하면서 한국 게임이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국산 비디오 게임은 대부분 일본 게임을 영어메뉴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앞뒤가 안맞는 정책이다.
보호할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 오히려 비디오 게임을 개방해야 한다. 게임기와 소프트웨어가 정식으로 수입되면 국내 비디오 게임시장이 성장할 건 분명하다.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날 것이고 불법 복제물 시장도 위축될 것이다.
시장도 없는데 보호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시장이 커져야 국산 비디오 게임도 산다. 어느 정도 시장규모가 생겨야 국산 게임이 들어갈 틈이 생긴다. 다른 문화상품처럼 게임도 ‘정서’란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할리우드 영화 틈에서 선전하는 한국영화처럼, 성공한 국산 PC 게임들처럼 국산 비디오 게임이 인기를 끌지 말란 법은 없다.
박 상 우(게임평론가)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