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60년이 지나 나온 ‘환타지아’의 후편, ‘환타지아 2000’을 만났다. 21세기의 폭신한 시사회장 좌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연작이라는 점에서는 전편과 다름이 없다. 입체감 넘치는 서라운드 사운드와, 실사에 가까운 현란한 CG(컴퓨터 그래픽)기술의 데몬스트레이션 ―가장 먼저 눈귀에 와닿는 변화다.
추상적 이미지로 표현된 베토벤 ‘운명’은 맛보기로 넘어가자. 이어지는 레스피기의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는 약간 당혹감을 불러 일으킨다. 작곡가가 의도한 ‘고도(古都)의 절경’은 간 데 없고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래가 내뿜는 포말을 따라 하프가 푸르릉거린다. 로마 기갑병의 개선 멜로디에 맞춰 드넓은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의 행진이 사뭇 장엄하기 이를데 없다.
밝고 단순한 선화(線畵) 스타일로 뉴요커들의 일상에 담긴 스냅샷을 그린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토이 스토리’ 필름이 쇼스타코비치의 ‘비관적’ 선율에 빠졌다 나온듯한 피아노 협주곡 2번 (필름 제목은 ‘장난감 병정’) …. 달큼한 소스 맛이 난다. 세기초 무용예술계의 대부로 불렸던 디아길레프도 만화속 홍학의 댄스에는 넋을 놓지 않을지.
순간 화면이 조금 거칫한 입자감을 풍긴다. 40년작 ‘환타지아’에서 불후의 명편으로 불리는 ‘마법사의 제자’가 ‘환타지아 2000’의 한 에피소드로 삽입된 것. 미키 마우스가 조각낸 빗자루가 다시 물을 긷기 시작하자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진다.
‘마법사의 제자’가 갖는 중량감에 눌리지 않겠다는 의도일까. 줄거리가 명확하고, ‘도널드 덕’이라는 명 캐릭터가 있고, 음악의 대중성도 있는 ‘위풍당당 행진곡’을 뒤에 바로 이어 배치한 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동물들의 힘찬 걸음, 밝고 널찍하게 쓴 화면은 곡이 갖는 희망과 영광의 묘사를 손색없이 재현했다.
아쉬움 ―후편 지휘자인 제임스 레바인은 풍모가 갖는 카리스마에 있어서 전편의 스토코프스키에 멀리 미치지 못했다.
◇ ◇ ◇
19세기 중엽,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과 문학, 미술이 만나는 총체예술’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악극’ (Musikdrama)을 발표했다. 1940년, 월트 디즈니는 ‘음악, 환타지, 발레, 색채가 어우러진 총체예술’을 내세우며 ‘환타지아’를 만들었다. 생전 상상도 못했던 ‘동영상과 음악의 만남’을 보게 된다면 바그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연이겠지만, 디즈니와 그의 제국은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 악극에 매혹돼 지은 ‘노이슈반스타인 성(城)’을 본따 자신들의 로고를 그렸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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