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세상스크린]모두가 소중합니다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41분


저는 어린이 영화 ‘바이오맨’에서 액션장면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또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도 액션장면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관객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휘두른 주먹에 박수를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바이오맨’에서 휘두른 주먹은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두 영화 다 박중훈이 나왔고 똑같이 열심히 휘둘렀는데도 말입니다.

◇영광도 같이 나눠야

영화가 개봉된 후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재미 있으면 관객들은 배우에게 환호를 보내주시지만, 질이 떨어지거나 재미없을 때면 배우를 보기 싫어합니다. 감독이나 제작, 기획자가 처음 작품을 구상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글로 옮기고, 촬영 조명 녹음 배우 등 각 분야 100명이 넘는 인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몇 달간 촬영한 뒤 음악 효과 믹싱 등 후반작업을 거쳐 홍보를 통해 관객에게 소개되는 것이 영화의 일반적 제작과정인데도 그 결과물이 좋으면 배우는 한 것 이상의 영광을 가져갑니다. 연출 시나리오 촬영 조명이 좋았고 음악이 감동적이어서 근사했던 장면에서도 배우는 그 장면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관객들에게 호감을 삽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 스탭에게 늘 고개숙여 감사합니다. 반면 연출 시나리오 촬영 조명 등 스탭들의 잘못으로 질타받아야 할 때 배우는 그 장면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관객들에게 밉상이 됩니다. 그 때는 답답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작품을 선택할 줄 안다는 것 또한 좋은 배우의 조건이자 책임이기도 하겠지만요….

이렇듯 관객에게 보여지는 최종 수단이 연기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겐 배우가 친숙하고 비중있게 느껴지겠지만 영화는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안성기선배가 ‘인정사정 볼 것없다’에서 보여준 마지막 장면, 비오는 결투신에서 열흘넘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태백시 소방관님들이 없었다면 그 세찬 빗줄기는 상상할 수 없었으며, 한 장면을 위해 무거운 조명장비를 하루종일 끌고 다닌 조명팀이 없었다면 감독과 배우가 아무리 잘했어도 흐리게 나와 필름을 현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험한 현장까지 밥을 날라준 제작 진행팀과 식당아주머니가 없었다면 영화팀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분장팀이 없었다면 제가 연기한 오형사의 진흙과 피투성이 얼굴은 불가능했고, 촬영버스 기사님이 안계셨더라면 제 시간에 촬영을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묵묵히 일하는 다수

자동차 엔진은 비중있는 부품이지만 그 엔진의 동력을 연결해주는 전선이 없다면 자동차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엔진은 자기만의 힘으로 차를 움직인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고 무수한 전선과 나사에게 감사해야 하며, 전선과 나사는 자신들의 역할을 통해 엔진과 차를 움직인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숲속에서 크고 잘난 나무들은 눈에 띄어 목재로 쓰여지고, 세상의 잘난 사람들은 눈에 띄어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 잘나지 않은 대부분의 나무가 숲에 남아 산을 지키듯, 대부분의사람들은 묵묵히 세상을 지켜줍니다. 세상엔 누구에게나 소중한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박중훈(영화배우)joonghoon@serom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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