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펜싱]세계 펜싱계가 놀랐다

  • 입력 2000년 9월 20일 23시 03분


시드니올림픽을 앞둔 지난달 태릉선수촌은 취재진으로 늘 북적거렸다.

그러나 금메달 효자종목인 레슬링장, 유도장이 붐비는 것과는 달리 같은 건물에 있는 펜싱장은 선수들의 함성소리만 드높았을 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4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도입된 펜싱. 반세기 남짓한 짧은 역사 속에서 현재 등록선수는 1100여명, 실업팀 4개가 고작이다.

그런 펜싱이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쾌거는 전세계 펜싱계를 뒤흔들 만한 ‘대사건’으로 평가된다.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1896년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이었던 펜싱. 당연히 본고장 유럽의 아성이었다. 등록선수만 해도 독일 40만명, 프랑스 30만명 등 두터운 선수층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시아권에서는 84로스앤젤레스올림픽 플뢰레 여자부에서 루안줄리(중국)의 금메달이 유일하다. 96애틀랜타올림픽까지 100년 동안 펜싱에서 나온 505명의 메달리스트 가운데 동양 선수는 그 혼자였을 정도.

김영호의 금메달은 행운이나 거저 이루어진 게 아니다. 대한펜싱협회(회장 장영수)의 아낌없는 지원과 대표팀 선수단의 노력이 빚어낸 ‘옥동자’였다. 올림픽 입상을 목표로 95년 5개년 계획을 세운 협회는 해마다 5억원 이상을 대표팀에 쏟아부었다. 1년에 절반 이상 해외원정을 떠나 유럽에서 각종 대회에 출전하며 선진기술과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에는 아시아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서울에 유치, 시드니올림픽 시드를 따내는 데 유리한 발판을 마련했다. 올림픽 금메달 포상금으로 5000만원을 내놓는 등 ‘당근책’도 썼다.

세계 정상으로 떠오른 한국 펜싱은 김영호의 우승 소감대로 지긋지긋한 비인기 종목의 꼬리표를 떼고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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