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스토리의 영화라고 하면 흔히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을 떠올리지만, 1950년에 나온 조셉 H. 루이스 감독의 <건 크레이지>(Gun Crazy>만큼 처절한 '도망남녀'를 그린 영화는 없다. 주인공 바트는 어려서부터 총 쏘는 일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가졌다. 그러나 이 재주는 곧 범죄로 이어지고, 교도소를 나온 그는 서커스단에서 총 쏘기 묘기를 부리는 여인 애니를 만난다.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그들은 은행강도를 계획하고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의 파란만장한 역정도 역정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모티프는 총에 대한 '총애'다. 특히 애니는 경찰에게 쫓기면서도 경찰차 타이어를 한 발에 명중시키고 쾌감에 휩싸이는 '권총광'이며, 우유부단한 남자는 그녀의 치명적 꼬임(이 영화의 원제는 "치명적인 여자(Deadly Is the Female)"다)에 빠져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영화는 92년 탐라 데이비스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는데, 원작의 악녀 이미지는 드류 배리모어에 의해 '순둥이'로 바뀌었다.
<건 크레이지>의 탈주 정신을 본받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1920년대 공황기 실존인물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형과 형수 그리고 어떤 '띨띨한' 녀석이 동행한 '5인의 도주'의 중심인물인 보니와 클라이드는 공권력을 희롱하며 미국 남서부를 휘젓는다. 하지만 결국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기관총에 의해 벌집이 되어 사라지고(이 장면은 프랜시스 코폴라가 훗날 <대부>에서 패러디한다), 결국 그들은 시대의 '총알받이'였음이 전해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너무 구식 장르영화라고 생각된다면, 또 하나의 실화 영화 <바바라 허쉬의 공황시대>(Boxcar Bertha)를 봐도 좋다. <바바라 허쉬의 공황시대> 주인공 버사 톰슨과 빌 셀리는 사악한 철도 자본가에 맞서 신출귀몰한 강도 행각을 벌이는 인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무정부주의적 성향이라면 <바바라 허쉬의 공황시대>의 남녀는 좌파 세력?
라스트 신에서 빌은 십자가에 못 박힌 듯 기차에 매달리는데, 이 장면은 스콜세지의 논쟁작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과 일맥상통한다. <바바라 허쉬의 공황시대>에서 기차를 따라 달리던 바바라 허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에서 막달라 마리아로 출연해 또 한 번 십자가를 바라본다.
탈옥수와 여자 친구의 코믹한 탈주극인 스필버그의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 경찰과 동료 갱에게 동시에 쫓기는 남녀의 이야기인 샘 페킨파 감독의 <게터웨이>(The Getaway) 등을 거친 '도망남녀'의 계보도는 90년대에 <트루 로맨스>(True Tomance)나 <올리버 스톤의 킬러>(Narural Born Killers) 같은 '개망나니 영화'로 이어지지만, 이 장르의 태두 자리는 역시 '미국영화계의 은둔자' 테렌스 말릭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가 1973년에 만든 <황무지>(Badland). 틴에이저 영화와 갱스터, 로드무비를 합성하면서도 장르영화이길 거부하는 이 영화는, 자신이 제임스 딘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청소부 키트와 편부 슬하의 엄한 집 딸 홀리가 주인공이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죽이고 무작정 떠난 그녀와의 여행길. 미국 전역에 조직된 민병대는 사냥개처럼 그들의 뒤를 밟지만, 이 영화는 추격의 긴박감 따위엔 관심이 없다. 대신 광활한 벌판에 지는 황혼이나, 어두컴컴한 밤에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냇킹 콜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두 남녀를 보여준다. 홀리는 자수하고, 키트는 결국 잡히지만 군인들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툭툭 던진다.
다른 영화의 도망자들이 길 위에서 살육하거나 멕시코 국경을 넘기 위해 안간힘 쓰거나 기껏해야 잠시 동안 사랑에 빠지는데 반해, <황무지>의 십대 청소년들은 뭔가 다르다. 호모 사피엔스. 그들은 도피 중인 길 위에서 '사유'하며, 키트는 인생을 다 산 아이처럼 시니컬한 표정으로 어른들을 비웃는다.
김형석(영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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