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문화]하자센터 아이들의 특별한 '파티'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5시 46분


“1년 동안 어른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17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청소년직업체험센터, 일명 ‘하자센터’가 개관 1주년 기념파티로 들썩였다.

하자센터는 연세대가 서울시의 민간위탁을 받아 약 400여명의 청소년들을 상대로 학교공부가 아닌 음악,웹 디자인 등 관심분야의 창작물을 만들게 함으로써 사회에서의 직업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하자’는 청소년들이 무언가를 스스로 해보자는 뜻.

하자센터 1주년파티 동영상보기

행사가 시작하기 10여분 전 하자센터는 여느 행사장과 마찬가지로 준비 스태프들의 바쁜 움직임으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조금 달랐던 것은 음향, 영상, 무대 등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모두 청소년 들이었던 것. 노란 머리, 뚫은 귀 등이 조금 낯설어 보이기도 했지만 분명 그 자체로 싱그러운 모습이었다.

3시가 되고 드디어 그들이 말하는 ‘파티’가 시작됐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파티는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시작됐다.

일명 ‘하자소년’(이곳에 있는 남자 청소년을 이렇게 부른다)이 무대에 오르더니 ‘벽화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고 그들이 직접 제작한 관련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벽화사건이란 지난 아셈 기간에 영등포 구청이 거리미화를 이유로 학생들이 직접 그린 하자센터 밖의 벽화를 지워버렸던 일.

“우리는 많이 화가 났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일을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우리의 뜻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좀 더 청소년다운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구청에 하고 싶은 말을 담은 랩 공연, 벽화 다시 그리기 릴레이쇼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청소년의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결국 구청의 공식 사과문을 받아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도 자신의 의지를 얘기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시작된 행사의 오프닝은 참가한 학부모들, 학생들에게 ‘하자센터’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이어 하자센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영상물이 상영됐다. 이곳에서 일하고 배우는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영상, 웹,시각디자인 등의 작업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센터가 일목요연하게 소개됐다. 물론 이 영상물도 ‘영상작업장’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결과물. 그 솜씨가 초보 학생들이 만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놀랍도록 완성도가 높았다.

작업장에서는 학생들이 각각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하는데 ‘명함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인터넷 명함회사 창업까지 발전시킨 과정도 소개돼 참석한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금까지가 그동안 하자센터에서 청소년들이 했던 작업의 소개라면 이후에는 앞으로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돌연 관객석에서 사이버 화장을 한 ‘하자소녀’가 점이 무수히 찍힌 하얗고 큰 종이를 들고 무대로 오르더니 털썩 주저앉아 가지고 나온 펜으로 점들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호기심이 가득찬 10여분이 지나고 드디어 ‘하자소녀’는 점들을 펜으로 다 연결한 후에야 종이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청소년들은 전세계 청소년들과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무수한 점들을 이은 선들은 바로 이들이 착수할 ‘전세계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상징했던 것. 이미 이들은 대만,일본 등지의 청소년들과 교류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참가자까지 네트워크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깜찍한’ 생각을 해냈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일본,대만 등지에서 만난 청소년들의 이메일 주소를 모두 적은 주소록을 선물한 것. 이는 네트워크를 계속 확대시켜 나가겠다는 이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날 행사는 이들의 실험적인 1년의 행보와 앞으로 학교 또는 사회에서 그려나갈 꿈들을 보여줬던 행사였다.

이곳을 알기 전에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었다는 이들. 물론 이곳이 소위 ‘문제’청소년들이 모인 곳은 아니지만 학교,어른들에게서 욕구를 채우지 못했던 청소년들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어른들의 직업을 체험하고 사회전선에 직접 뛰어들기도 하면서 어른들을 이해하게 됐고 자신들을 도와주는 어른들을 보면서 비로소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단다. 그래서 이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날의 행사를 스스로 기획했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행사장을 빠져 나오는 동안 내내 한 ‘하자소년’의 말이 맴돌았다.

“이제 ‘작업장’이 아닌 진짜 ‘사회’에서도 어른들과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가 진짜 문제겠죠.”

이희정/동아닷컴 기자 huib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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