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재선의원 그룹이 최근 김대통령에게 건의한 당정쇄신안에도 비록 구체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라인보다는 공식라인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이 2일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스템에 의한 당 운영’을 최우선적으로 건의한 것도 같은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당내에서는 김대통령이 그동안 국정운영, 특히 당 운영에 관한 한 최고위원회의나 당대표를 통하기보다는 권최고위원이나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을 비롯한 동교동 가신들이나 핵심측근들을 주요 채널로 활용해 왔다는 불만들이 팽배해 있었다.
박금성(朴金成)전 서울경찰청장 인사파문은 가신그룹이나 핵심측근들의 ‘비공식 역할’이 당운영뿐만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권최고위원의 사퇴는 일단 공식적으로는 비공식라인에 대한 정리작업 개시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은 18일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이제 막후 조정역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남북관계에서부터 여야관계에 이르기까지 김대통령의 광범위한 ‘비공식 특명(特命)’을 수행해오던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장관도 각종 현안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며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권최고위원이 사퇴했다고 해서 김대통령이 과연 오랜 야당시절부터 몸에 밴 ‘측근정치’스타일을 버릴 수 있을까. 여권 내에서조차 회의론이 더 많다. 그보다는 비공식라인의 구성인물들이나 그들의 역할에 변화를 주는 정도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뿐만 아니라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김대통령의 비공식라인 의존도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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