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비록 단풍의 묘미는 누리지 못했지만 예상밖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절도있게 도열한 군의장대의 쭉 늘어선 은행나무의 행렬을 한눈에 보는 것도 단풍을 보는 즐거움 못지 않았던 것.
◀뻥 뚫린 은행나무 가로수길.
연인과 함께 걷고싶은 이 곳에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데….
2차선 길을 따라 양쪽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은행나무들은 나무 사이사이의 간격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아보일 정도로 정렬되어 있었다.
이미 은행잎이 떨어진 나무가 많긴 하였지만 나무옆에 소복이 쌓인 은행잎들을 보는 것도, 쌓인 잎들을 일부러 '바스락'소리나게 밟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특히 쌓인 은행잎을 한줌 주워 공중에 던진뒤 춤을 추며 사뿐히 땅에 내려 앉는 것을 보며 문학소녀를 꿈꿨던 여고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문득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은행잎들을 찬찬히 살펴 보니 노랗게 물든 잎의 윗부분은 여인들의 머리 모양 같았고, 아직 단풍이 들지않은 아래부분은 연한 초록색의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 같았다.
이제서야 비로소 은행나무를 왜 처녀 머리(Maiden hair tree)라고 부르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무밑으로 소복이 쌓여 밟으면 '바스락' 소리가 나는 은행잎
단풍 제철이었으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곳이었으리라 생각되는 이 길은 지난 1973년에 관계공무원과 인근 학교의 학생들, 그리고 주민들이 350본의 은행나무를 함께 심은 것이 밑거름이 돼 오늘의 은행나무숲을 이루게 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아산시의 가로수들은 모두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고, 시에서는 주민들이 은행을 수확해 소득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민·관이 이렇게 공동으로 가로수길을 가꾸고 노력해 아름다운 거리를 이루었다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는 지구상의 식물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식물 중의 하나.
은행나무가 자생지인 중국 양자강 하류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불교나 유교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단연 은행나무이며, 노거수(老巨樹:오래되고 큰 나무로 산림청에서 지정)로 보호되고 있는 것도 자그마치 800그루가 넘는다.
또 실질적으로도 은행나무는 나뭇잎, 열매, 목재 등 우리네 살림살이에 쓰여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은행나무잎이 다른 나라의 것보다 약효가 10∼20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실제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아름답고 실효성 높은 은행나무가 이곳 아산시 전역에 심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 아산시의 자랑이기에 충분했다.
이곳 송곡리부터 현충사까지 연결돼 있는 3㎞거리의 은행나무길을 걸어나오며 문득 이곳의 나무들이 15∼20년후엔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은행나무들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계속 아산시를 아름답고 풍성한 거리의 도시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지금도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도처에 알려졌으면 하는 것이 심사단의 바람이었다.
홍혜란/생명의 숲 사무처장 forestfl@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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