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비스사인 AOL은 최근 미국 최대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타임워너와의 합병을 최종 승인받아 주식 시가총액이 2090억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공룡’으로 재탄생했다.
영화(워너브러더스), 잡지(타임, 포천,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방송(CNN), 유료 케이블 채널(HBO), 음악(워너뮤직) 등의 콘텐츠를 ‘머리’로, 13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전국적인 케이블망(워너케이블)과 2억6000만명의 AOL가입자, 2500만명의 컴퓨서브(인터넷 서비스업체)가입자, 그리고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이용자를 ‘몸통’으로 하는 이 공룡의 주인은 불과 마흔 두 살의 스티브 케이스 AOL타임워너회장이다.
세계 최대의 멀티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그는 ‘미디어 제국의 제왕’이다. 할리우드도, 월스트리트도, 실리콘밸리도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의 ‘미디어제국’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평범한 일상에까지 손길이 뻗쳐 있다. 학생들은 ‘타임’과 CNN을 보며 영어를 공부하고 AOL의 무료 채팅 서비스를 이용해 친구들과 접속한다.
영화관에서는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퍼펙트 스톰’을 보고 집에서는 케이블 TV를 통해 HBO를 시청한다. 10대들은 ‘워너뮤직’ 소속 그룹 R.E.M의 음악에 열광하고 마돈나의 CD를 산다.
일부에서는 커뮤니케이션 통로와 문화를 장악한 그가 마침내 ‘제4부’(언론)를 제치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제5부’의 권좌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20대에 사업을 시작한 케이스가 불과 15년 만에 정상에 우뚝 선 비결은 뭘까.
하와이 출신인 그는 80년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대 정치학과를 졸업할 당시 이미 “TV는 앞으로 신문, 학교, 컴퓨터, 상품 카탈로그를 모두 합친 정보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85년 AOL의 전신인 퀀텀컴퓨터서비스에서 출발, 91년 AOL로 이름을 바꿨다. 그의 신념은 뚜렷하고도 확고했다. 통신, 동호회, 명료함을 뜻하는 3C(communication, community, clarity).
이를 위해 대화방, 동호회를 적극 지원하고 복잡한 명령어 대신 간단한 화면구성과 큼직한 아이콘으로 승부를 걸었다. 결국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친밀감을 조성한 것이 성공의 관건이었다.
그는 AOL에 대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축구장 관람석, 비행기 기내식, 심지어 냉동육 포장지에까지 PC통신 접속프로그램이 든 디스켓을 무차별 ‘살포’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한번 일에 빠져들면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그를 중심으로 AOL은 공격적이고 유연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갔다. 특히 필요에 따라 전략적인 제휴나 관계를 맺는 일에 능했다. 그는 AOL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동지’인 넷스케이프 대신 ‘적’인 MS와 손을 잡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AOL은 ‘사이버세계의 바퀴벌레’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수많은 위기에서 살아남아 ‘승자’의 위치에서 21세기를 맞았다. 그의 궁극적인 꿈은 AOL타임워너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인터넷의 월마트’로 만드는 것. ‘인터넷 월마트’는 누구나 쉽게 정보를 찾고 오락, 쇼핑을 할 수 있는 만능 슈퍼스토어를 뜻한다.
이제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술혁신도, 마케팅도, 콘텐츠도 아니다. 작년 2월 열린 스위스 다보스 포럼 토론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이나 콘텐츠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오로지 소비자가 왕이다. 인터넷 사업에서는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며 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쉽게 얻고, 보다 편하게 의사소통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AOL타임워너 영향력 막강…CNN-영화-음반등 실생활과 밀접▼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국경이 사라지고 지구촌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나오고 있는 말이다.
세계 미디어시장의 ‘패자(覇者)’를 노리는 종합 미디어그룹은 AOL타임워너 외에도 비벤디유니버설, 비아컴, 그리고 뉴스코퍼레이션 등이 있다. 그러나 규모나 영향력 측면에서 단연 AOL타임워너가 선두다.
국내에서 AOL타임워너는 이미 친숙하다. 대표적인 것이 CNN.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뉴스를 시시각각 위성을 통해 국내로 전하고 있다. 따로 위성수신 장치를 갖고 있지 않아도 케이블TV나 중계유선 방송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도내용이 미국의 시각만을 반영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CNN측은 향후 한글자막 방송까지 계획하는 등 급속히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시청자층의 확대를 발판으로 2월부터는 유료화될 예정.
영화의 경우 타임워너코리아는 지난해 서울에서만 65만명이 본 ‘퍼펙트 스톰’을 비롯해 ‘그린마일’ ‘아이즈 와이드 셧’ 등 10편을 들여와 총 16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99년 수입된 영화 ‘매트릭스’ 한편만도 100만명이 관람했다.
지난해에는 AOL타임워너가 소유한 세계 최대의 영화 채널 HBO가 케이블TV에 상륙, 국내 TV에도 진출했다.
타임워너가 펴내는 타임, 포천 등 잡지의 국내 발행부수는 5만∼6만부에 이르며 가수 ‘마돈나’ ‘애릭 클랩튼’의 소속사인 워너뮤직코리아는 지난해 팝음반으로만 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AOL타임워너가 지배하는 ‘미디어제국’으로 속속 편입되고 있는 셈이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