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이 만화에서 밝고 귀여운 고교 1년생들의 이야기로 여타 학원물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기존의 많은 학원물이 폭력 위주의 자극적인 소재들을 부정적으로 다룬 것에 반해 실제 학교생활에서 피부로 느낄수 있는 문제점이나 그 또래의 고민들을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
그렇다고 <플러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신입생인 주인공 마리는 첫사랑 동건 오빠와 같은 반이 돼 기쁘지만 한편으론 가슴앓이를 한다. 인기 많은 동건이 이성으로 대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를 쫓아다니는 매력적인 선배 여학생과도 사랑의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동건 역시 교내 스타지만 나름대로 가족사의 상처를 갖고 있다. 자취방을 꾸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부모가 없는 탓에 혼자 생활비를 버느라 허덕이곤 한다. 주인공들은 이밖에도 동성 친구와의 갈등과 공부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린다.
작가는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풀어가는 대신 즐겁게 바라본다. 무슨 사정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동건은 1년 후배 학생들과 한반이 되어 "야! 너!"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칙칙한 신세. 그러나 이런 상황을 신경쓰지 않는 털털한 성격이다.
그와 중학교 시절 단짝이던 초신성은 천부적인 파이터 기질을 지니고 있지만 주먹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학교에서 짱을 먹는다면 아이들이 설설 길만도 한데 17명을 혼자서 해치운 녀석치곤 너무 멍청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다.
학교 밖 인물도 마찬가지. 마리의 아빠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딸에게 "고교 3년간은 너무 짧아! 맘껏 놀아라"며 부추기는 '날라리' 부모다. 어떻게 보면 캐릭터들의 성격이 너무 가벼워보이지만 심각하고 어른스러운 학원물에 식상한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만화의 또다른 재미는 등장인물이 만화 안팎의 대상에게 천방지축으로 말을 건넨다는 데 있다. "작가양반, 왜 하복이 동복보다 짧아진거죠?"라며 작가에게 불만을 드러내는가 하면 "너같은 애가 소년지에서 오래 버틸성 싶냐"고 다른 캐릭터를 꾸짖는다. 만화 주인공들이 허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하는 것이다.
오현주<동아닷컴 기자>vividr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