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4시/에필로그]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 입력 2001년 2월 2일 18시 39분


“노인의 권리만 내세운 TV 광고 때문에 요즘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노약자석을 차지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하는 것 같다. 이 광고는 ‘어른’이 갖춰야 할 소양에 대해서는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않고 있다.”(‘네띠앙’ ID‘karen10’)

“노약자와 장애인 보호석을 없앤다면 정말 필요한 노인들은 피해를 봅니다. 이 분위기는 분명히 위험합니다.”(‘다음’ 아이디 ‘stop0’)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네띠앙’ ‘다음’ 등의 게시판을 뜨겁게 달궈 온 이른바 ‘박카스 TV광고 논쟁’의 한 대목이다. 축구를 하다가 발목이 접질린 한 청년. 지하철로 귀가하던 중 텅 빈 노약자석 앞에 선다. ‘아프니까 앉으라’는 친구의 권유에도 부상한 청년은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고 얘기하고 그에 이어 “지킬 것은 지킨다”는 레이션이 흐르는 대목이 이 노약자석의 존폐와 운영방법 등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정작 네티즌들은 이 논쟁을 세대간 갈등으로 간주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 논쟁을 처음부터 지켜봤다는 ‘다음’의 ‘지하철에 목숨 건 사람들’ 동호회의 운영자 이정석씨(21)는 “그동안 지하철에 대해 할 말 많고 정보에도 목말랐던 시민들이 인터넷을 ‘토론의 장’ 삼아 의견을 쏟아낸 것”이라며 “자신들의 ‘발’과 ‘생활공간’을 스스로 만들고 바꿔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의 시작”이라고 자평했다. 실제 인터넷에는 지하철을 ‘상용’하는 시민들의 전용 사이트만 10여개에 이른다.

연초부터 오늘까지 27회에 걸쳐 지하철 모든것을 살펴본 이 시리즈에 대한 시민들의 열띤 반응도 결국 “이제 지하철은 우리 손으로!”였다.

20여년간 1호선 회기역 인근에 살았다는 한 시민은 “국철 구간에는 아직 지붕조차 없는 플랫폼이 많고 휴일에는 배차간격이 20분이 넘는다.”며 구(舊)노선에 대한 정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시민 정종우씨는 지하철 에티켓을 지적한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꼴불견 백태’(1월22일자) 기사를 보고 자기 나름대로 작성한 또다른 ‘백태’를 E메일로 보내오기도 했다. △전동차 내에서 멋대로 다리 꼬지 말 것 △가만히 서서 에스컬레이터 이용하려면 오른쪽에 설 것 등이 그 내용이었다.

이렇게 지하철을 매일 ‘피부’로 느끼는 시민들의 다양한 지적과 의견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만나는 ‘광장’을 상설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는 요즘 지하철에 관심있는 시민들과 해당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옴부즈맨 기구 ‘지하철 시민위원회’의 발족을 준비 중이다. 이 단체의 최정한 사무총장은 “단순한 ‘민원’이나 ‘애로사항’으로 그칠 수 있는 시민 의견을 결집하고 전문가 검증을 거쳐 제도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이런 기구가 보편화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지하철당국이 강사를 초청, 직원들의 친절봉사교육을 시키는 수준이 고작이다. 아직 시민들의 지하철 감시 기능이 전무한 셈.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경철(金敬喆)박사는 “최근 본격화된 ‘문화철’ 운운의 얘기도 뒤집어놓고 보면 적은 비용으로 ‘홍보 효과’를 노리면서 정작 해결하기 힘든 ‘난제’들을 비켜가는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예컨대 현재 검토중인 ‘급행 열차’만 해도 시민들의 이용분포를 점검해 전노선으로 확대할 경우 적은 투자로 엄청난 승객유인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관계기관 간의 이해대립으로 아직 지지부진한 시내버스와 지하철의 유기적 연계 등도 최종 소비자인 시민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스물일곱살 ‘청년’으로 그 ‘골격’을 갖춘 서울지하철. 앞으로 어떻게 커가느냐는 문제는 이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달렸다.

<하종대·이승헌기자>orionha@donga.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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