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사회당 정부는 유럽연합의 권리헌장에서 유럽의 ‘종교적 유산’에 관한 조항을 지우도록 했다. 프랑스인에게 종교적 유산이란 다름아닌 가톨릭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톨릭은 권리의 주장이 아니라 권위에의 복종을 가르쳤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가톨릭 주요 주간지 ‘그리스도교의 증언’은 그리스도교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서명을 모아 탄원서를 싣기도 했다.
가톨릭에 대한 이러한 민감한 반응은 죠스팽 총리가 프로테스탄트이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요즘 대중 매체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TV쇼에서 교황은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된다. 불교나 이슬람에는 그러지 못하면서도 가톨릭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적 태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난해말 출간된 이 책은 프랑스에서의 그리스도교 상황을 바로 이해시키고 그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때마침 유럽의 ‘종교적 유산’ 논쟁과 시기가 맞아떨어지면서 가톨릭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
프랑스 한림원 회원이자 국립정치학재단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20세기 역사 연구의 권위자로, 파리 낭테르대 총장, 현대사 연구소장, 프랑스 가톨릭지식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약 30권의 저서 중 ‘프랑스의 우파’(1954)는 정치학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근래에는 그리스도교에 관한 ‘유럽에서의 종교와 사회’, ‘프랑스에서의 반(反)교권주의,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발명품들’을 썼다.
저자는 현재 만연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에 대한 멸시 풍조로 미뤄 볼 때 19세기말∼20세기초 프랑스에 팽배했던 반교권주의 현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아울러 그리스도교의 가치 하락이 상당 부분 이 종교의 본질과 전통에 대한 오해와 무지, 그리고 세대 차이에서 왔음을 밝히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또한 서양문명을 이루고 있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의 개념이 그리스도교의 산물임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본다. 자신의 종교에 대한 깊은 신뢰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더 이상 서양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의 접촉 속에서 새롭게 발전해나갈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현 프랑스 사회의 위기를 검증하는 이 책은 종교의 차이를 떠나 여론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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