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에게 애착이 형성된 탓에, 집도 어린이집도 심지어 부모조차 낯설어 마음을 붙이지 못한다. 교사가 아이를 안고 업고 어르다 끝내 안타까운 심정에 아이와 같이 울기도 한다.
할머니가 기른 아이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된장국과 김치를 잘 먹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가 홀로 키운 아이들이 낯가림이 심한 것과 달리 조부모가 기른 아이들은 누구에게나 잘 다가가는 등 사회성이 좋다.
조선조 우리 조상들은 손자손녀가 잠자리에서 지리지 않을 때가 되면 손자는 할아버지 방으로, 손녀는 할머니 방으로 옮겨 가르치는 격대교육(隔代敎育)을 시켰다. 젊은 부모는 자녀에 대한 기대가 높고 욕심이 앞서서 자녀가 잘 따라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질책하므로, 주눅이 든 채 아이의 마음속에는 저항심이 생기니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한편 조부모는 세상사를 관조하는 나이가 되어, 손자손녀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이의 생각과 요구를 귀담아 들을 여유가 있으며, 감정을 절제한 상태에서 타이르므로 아이가 저항 없이 그 뜻을 따르기에 저절로 교육이 된다고 보았다.
손자를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던 차에 아들 내외가 어린이집 식당봉사할 틈이 없다고 연락하면 할머니는 천리 길을 달려와 설거지를 하신다. 그릇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닦았는지 다른 날과 달리 스테인리스 그릇에서 윤이 난다. 그동안 얼굴이 펴지지 않던 아이도 할머니의 품에 흐뭇한 표정으로 안겨 있다.
요즈음 교양 있는 멋쟁이 할머니들은 손자손녀를 기르려 하지 않는다. 힘들여 아이를 키워도 ‘새 본 공, 애 본 공은 없다’는 옛말처럼 아이가 응석받이로 자랄 것을 염려하는 젊은 부모와의 마찰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조부모와 부모의 신사협정(?)으로 아이가 외롭게 방치되는 것을 볼 때마다 식당봉사를 마친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 내 손자를 잘 기르는 일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디 있습디까?”
이순형<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ys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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