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에 걸친 작가 생활을 총집결시켜 예술 만화 <슬픈나라 비통도시>(초록배 매직스 펴냄)를 출간한 강성수씨는 책 서두에서 '만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백과사전만큼 커다란 판형으로 나온 이 책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부조리한 사회를 비웃는 소재들로 가득 메워진 이 비주류적인 만화는 겉표지에서부터 누가 봐도 섬뜩할 만한 사진을 싣고 있다.
한 남자의 팔에는 주사기가 꽂혀 있고 그 주사기의 줄은 어린애 장난감같은 물총으로 연결돼 있다. 선혈이 낭자한 그 사진의 이미지는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슬픈나라 비통도시'에서 이러한 물총질은 더욱 유희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총 40개의 장으로 구성된 단편 만화들은 국가와 사회와 가정을 극단적으로 조롱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비웃고 결국 그 안에 살고 있는 자신까지 철저히 조소한다.
세금이 69년 동안 걷히지 않은 비통도시에 파견된 공무원. '윗분'이라는 사람은 그에게 "일하다 무료하면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는 거 잊지 말게"라는 충고를 해주지만 결국 그는 그 여자들 때문에 자신의 성(性)까지 바꾸게 된다. 남성의 권리와 공권력을 휘두르려는 그를 마을 여자들이 트렌스젠더(성전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단 하나의 컷으로 이뤄진 만화, 행위 예술 스틸컷들과 어우러진 만화에서 보듯 파격적인 형식도 눈에 띈다. 어떤 만화는 거꾸로 읽어야 되고 어떤 만화는 책을 옆으로 뉘어 봐야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컬러는 내용만큼이나 어둡고 차분하다. 거의 모두가 검정색을 배경으로 깔고 있어 이미지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강씨는 90년대 초부터 획일화된 상업 만화 제작 시스템을 거부하며 실험만화 무크지 <만화실험 봄>을 창간하는 등 비주류 만화에 열중해 왔다. 그는 "이 책은 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그동안 생각해 왔던 이미지들을 이 곳에 다 쏟아부으면서 한결 성숙해진 느낌이다"고 말했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 2만원
오현주<동아닷컴 기자>vividr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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