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규모와 권위 면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제25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미쉘 두독 드 비트’라는 스타 감독의 탄생을 알리며 최근 폐막했다.
프랑스의 작은 휴양도시 안시에서 열린 이번 페스티벌에는 총 1070편의 장 단편 애니메이션이 출품돼 예심을 거친 242편이 경쟁 부문과 비경쟁 파노라마 부문에 올랐다. 이중 26개국 193편이 경합을 벌인 경쟁 부문에서는 미쉘 두독 드 비트의 ‘아빠와 딸’이 단편에서, 빌 플림턴의 ‘돌연변이 외계인’이 장편에서 각각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TV 시리즈에서는 벨기에 작품 ‘마을의 공포’가 수상했다.
▼'비트' 스타감독 탄생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미셀 두독 드 비트의 그랑프리 수상은 행사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과. 그의 3번째 단편 ‘아빠와 딸’은 이미 지난 해부터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비롯해 클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 네덜란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아빠와 딸’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성장 과정을 담담한 시각으로 그린 8분30초짜리 작품. 동양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여백과 수채화의 농담을 살린 투명한 색감, 서정적인 배경 음악의 멜로디와 기막히게 어울리는 편집이 돋보였다.
장편 그랑프리를 수상한 빌 플림턴은 국내에서 개봉된 ‘나는 낯선 사람과 결혼했다’로 친숙한 인물. 그의 신작 ‘돌연변이 외계인’은 우주비행에 나섰다가 정부의 음모로 우주 미아가 된 한 우주 비행사가 딸과 만나기 위해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담았다. 플림턴 특유의 성과 폭력에 대한 희화적인 묘사가 눈길을 끈 이 작품은 페스티벌 내내 관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아빠와 딸' 그랑프리 수상
올해 안시 페스티벌은 2∼3년 전부터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디지털 기법이 이제 애니메이션의 보편화된 기법으로 자리잡았다는 특징을 보였다. 예전에는 컴퓨터 그래픽의 정교한 표현력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디지털 영상인지 실사인지 언뜻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화면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한편 학생 부문의 작품들이 파격적인 소재의 ‘엽기’에 치중한 반면, 일반 경쟁 부문 작품들은 휴머니즘을 강조한 서사적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번에 단편과 장편의 그랑프리를 탄 작품이 모두 아버지와 딸의 이별을 다루었다는 점도 그런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한국 7편 모두 수상 실패
한국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7편이 경쟁 비경쟁 부문 본선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우리 작품은 현지 시사에서 제작기법이나 완성도 면에서 프랑스나 영국 같은 애니메이션 강국과 견주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가정 성폭력 문제를 과감하게 다룬 ‘아빠와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치중한 외국 작품들에 비해 선명한 주제의식이 돋보인다는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주제를 풀어가는 표현력과 묘사가 아직 경직된 부분은 ‘옥의 티’로 지적됐다.
김재범(애니메이션 평론가)oldfield@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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