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 사상 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하 ‘만드는 모임’)이 만든 중학교용 역사 교과서가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이 단체의 중요한 목표는, 이름 그대로 자기들이 신봉하고 있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전국 각지의 학교가 채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장벽이 문부과학성의 검정이었는데, 이 번에 이 장애물을 교묘히 통과함으로써 공립 중학교에서 이 교과서의 사용이 현실화되었다.
일본 국내에서도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책은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 이 교과서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를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해서 알기 쉽게 설명하려 한 점이 지금까지 나온 여타의 책들과 다른 점이다.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가 채용될 경우,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그 책으로 배워야 할 중학생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 독자층을 중학생으로 한 저자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선 이 책의 돋보이는 특징은, 매우 세심하게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를 숙독해 문제점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파헤쳤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먼저 문제로 들고 있는 것은, 이 교과서가 너무도 많은 사실의 오류와 기술의 부정확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가 ‘국가 엘리트’의 입장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역사 속의 피지배자와 차별당하고 침략당한 이들의 시점과 행동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과 중국, 오키나와와 아이누, 여성과 이름없는 민중들에 대한 기술은 편견과 무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이 교과서는 마땅히 검정 과정에서 통과시키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일본의 많은 학자, 지식인들은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아무리 비판의 화살을 던지다 해도 ‘만드는 모임’의 멤버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즉, 일본 사회는 지식인들의 의견이 사회 전체에 좀처럼 침투하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현재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전국의 각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의 상위를 점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배후에서 ‘만드는 모임’을 지지하는 일부 정치 단체와 매스컴의 영향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드는 모임’이 표방하고 있는 슬로건 자체가 대중들의 숨겨진 욕망에 답하고 있다는 측면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떠 받치는 비합리적인 신화와 배외적인 이데올로기를 다시 한 번 확립하는 것이다. 이 교과서가, 전전(戰前)의 ‘황국사관’이 부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천황의 존재에 대단히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복고가 아니라, 2000년의 내셔널리즘에 대응하는 역사상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은 매우 적확하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관건은, 일본의 비판 세력이 대중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제국주의’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그리고 과연 대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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