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교과서 파동은 한일간 신뢰에 큰 상처를 안겼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가 아량을 보이면 일본도 성의를 보일 것’이란 한국측 기대를 저버렸다.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무르익던 문화 스포츠 청소년 교류가 중단된 것도 큰 손실이다.
기존 7종의 역사교과서 중 일본의 가해 사실을 충실히 기술한 ‘일본서적’의 채택률은 떨어졌다. 논란을 피하려는 일본 내 분위기를 보여준 것이다.
교훈도 얻었다. 양국간 역사인식은 ‘휴화산’이라는 것이 거듭 확인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 지나치게 빨리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모임교과서 채택 상황(중학교) | ||
분류 | 채택 교 | 학생수(명) |
국립 | 없음 | |
공립(4개교3분교) | 도쿄도 양호학교(2개교 2분교) | 60 |
에히메현 양호, 농학교(4개교 1분교) | 15 | |
사립(6개교) | 조소학원 | 439 |
국학원대 도치기 | 215 | |
고지학원 레이자와미나미 | 126 | |
즈다학원 | 87 | |
고갓칸 | 235 | |
고시엔학원 | 52 | |
합계 | 12개교 3분교 | 1229 |
일본 중학생 수(추계) | 410만 | |
채택률 | 0.03% |
일본의 시민단체 힘을 확인한 것은 소득이다. 모임교과서 채택을 궤멸 상태까지 몰고 간 것은 학부모와 시민단체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과제도 남겼다. 외국 교과서가 한국에 관해 어떻게 기술하는지 늘 정보수집과 감시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문제 발생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라도 양국의 역사인식을 좁히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은 양국 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현대사 부교재를 만드는 일이다. 또 양국의 문화교류 단체, 학자, 교원노조, 시민단체 등이 각각 공동작업에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정부 차원 후원도 절실하다.
정부가 대일 강경조치 분위기에 휩쓸려 청소년 교류까지 중단시킨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교과서 파동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일본 내에서는 “한국 교과서는 일본에 관해 제대로 썼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번 기회에 ‘자기점검’을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식자층은 한국측 교과서가 제2차세계대전 후 달라진 일본의 긍정적인 면을 더 다뤄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日정부 왜곡교과서 승인 일반인 정서와 크게 달라"▼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이 쓴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 관계자들은 16일 승리를 자축하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표결을 통해 간신히 이긴 경우가 많았고 4년 후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
또 모임측이 고교용 역사교과서와 초등학교의 다른 교과서도 집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사무국장은 “최근 7개월간 1000여곳에서 모임교과서에 반대하는 집회와 강연회, 서명운동이 벌어졌다”며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이번만큼 같은 문제에 대해 일본인이 광범위한 관심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아일보에 모임교과서에 반대하는 광고를 낸 뒤 한국인으로부터 많은 격려 메시지를 받았다”며 “일본인의 대부분은 모임교과서를 합격시킨 정부와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한국인에게 알려준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9월경 한국 중국 일본 북한 등과 함께 ‘역사교육 아시아 네트워크’를 만들고 10월에는 중국 난징(南京)에서 ‘교과서 심포지엄’도 열기로 했다.
또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학자와 공동 역사 부교재를 만드는 일에도 착수한다.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