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첫인상 평이다. 뾰족한 턱에 눈이 위로 올라간 데다 전체적으로 얼굴 선이 얇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으로 내 첫인상은 그야말로 빵점인 셈이다.
이런 얘기에 별로 기분좋을리 없는 나도 다른 사람들을 첫인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첫인상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비합리적임을 잘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일을 하다 보면 대부분 그 첫인상에 대한 느낌이 맞다는 게 문제다. 특히 감독들의 경우는 거의 80∼90%가 맞는다.
‘신라의 달밤’을 만든 김상진 감독은 첫인상부터 코미디언 같다. 얼굴이 코미디언이라는 것이 아니라 행동거지나 얼굴에서 번져 나오는 이미지가 ‘야, 저 사람은 자기 영화랑 딱 맞구나’하는 생각을 절로 나게 한다.
함께 일하진 않았지만, 허진호 감독은 ‘멜로 과’다. 우연히 저녁 자리에서 두어 번 만난 그의 인상은 그랬다. 키 크고 허옇게 생긴 얼굴에서 느껴지는 선함과 차분하고 섬세한 행동들이 그가 만든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들과 비슷하다. 인물 뿐 아니라 영화 자체가 허진호다.
그런데 그 첫인상의 느낌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대개 연기자들이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이성재 씨는 젠틀하고 어른스럽고 우수에 찬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론 아이 같이 맑고 순진하다. 함께 있으면 철없는 막내 동생 같아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런 친구가 어떻게 ‘거짓말’(KBS 드라마) 같은 작품을 했을까, 가면 쓰고 다니나?
차승원 씨도 마찬가지다. 첫인상은 뺀질거리고, 이기적이고, 자유분방에다가 ‘내 멋대로 산다’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그런 첫인상을 과감히 배신하는 사람이 차승원이다. 너무 성실하다. 늘 작품 때문에 고민하고 그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몇 개월을 연구한다. 또 터프한 이미지와는 달리 남을 배려하는 따뜻함이 나의 입을 딱 벌리게 만든다.
‘신라의 달밤’ 제작 때 며칠 간 밤샘 촬영에 지쳐 아침식사를 거르고 잠을 자는 파트너 이성재 씨를 위해 식당에서 도시락을 챙겨 아침을 먹이는 그 섬세함이나, 빡빡하고 시꺼멓게 분석해 놓은 그의 대본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배우들은 겉보기와 달라
나를 경험(?)한 사람들 역시 내 본색을 알고 나면 기겁을 한다. 털털하고 덜렁이일 뿐만 아니라, ‘내숭과’처럼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밥순이니까. 세상에 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못 먹는 게 없을 정도다.
영화의 묘미가 멋진 반전에 있듯 첫인상과 선입관을 깨트리는 일, 이 또한 삶의 즐거움이 아닐까?
<영화제작자·좋은영화사 대표> greenpapaya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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