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청탁으로 조직의 의사결정이 굴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공과 사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청탁으로 인해 공적 결정이 굴절될 때 치러야 할 손실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먼저 결정의 합리성이 떨어지게 된다. 능력있는 사람이 채용되지 못하고 대신 부족한 사람이 결정권자와의 특수관계 때문에 채용된다고 할 때, 그 결정이 초래할 손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둘째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 책임자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청탁에 좌우되는 리더십으로는 조직 성원들을 설득해 낼 수 없고, 조직 성원의 자긍심과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청탁 문제를 의사 결정자 개인에게만 맡기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결정 과정과 내용을 구성원들에게 소상히 알리는 것이다. 투명할수록 비합리적인 청탁이 관철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둘째 최대한 구체적으로 규정을 정해 그에 따르도록 한다. 예컨대, 대학이 요구하는 엄격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지원자는 나를 포함해 대학 내 어느 누구와 어떤 특수한 관계를 갖고 있더라도 채용과정에 이익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엄격한 규정은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불합리한 청탁을 차단하는 장치도 된다.
셋째 의사결정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대학운영의 결정 권한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면 그만큼 청탁의 성사율은 높아지게 된다. 반면 여러 단계에 걸쳐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면 특정인에 대한 비밀스러운 청탁이 관철되기 어려워지게 된다. 교수 또는 직원 채용에서 10여 단계에 걸쳐 많은 관계자들이 결정과정에 참여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를 겪은 것도, 정치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잘못된 청탁문화와 연고주의 관행 때문이 아닌가. 청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연고가 많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문화, 그것을 출세할 수 있는 자산으로 받들어 주는 의식이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얼마나 떨어뜨려 왔는가.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의리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문화가 인간관계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어 왔는가. 이제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조직 전체를 우선시하면서 페어플레이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지혜인 것이다.
윤덕홍 대구대 총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