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이가 있는 곳은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삶과 죽음이 시시각각 교차하는 곳이다. 일반인이라면 말만 들어도 고개를 흔드는 뇌종양, 뇌혈관 손상, 대형 교통사고 환자들이 이곳에서 집중치료를 받는다. 중환자실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인공호흡기 등 각종 의료기기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의식이 거의 없고 따라서 말도 없다. 의료기기에서 나는 신호음과 의료진의 대화가 있을 뿐이다.
중환자실 수간호사로 일하게 된 것은 2년전. 출근했을 때 전날 상태가 안 좋았던 환자의 침상이 비워져 있으면 덜컥 두려움부터 앞섰다. ‘숨진걸까. 살리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이 매달렸는데….’ 그러나 지금은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을 지우기 위해 애를 쓴다. 고통 속에서 세상을 등진 환자를 모두 기억한다는 것은 또다른 ‘고통’이다.
20년 전 신참 간호사 시절. 사람이 숨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40대 말기 간암 환자였다. 그는 가족을 두고 세상을 등져야 한다는 죄책감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부인의 모습은 달랐다. 냉정해보일 정도로 의연했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1년 뒤 환자의 부인이 병원을 다시 찾았다. 남편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곳을 둘러본 뒤 “이제서야 남편을 잃은 슬픔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겉으로는 냉정하게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부인이 한 말은 ‘환자 가족의 고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20여년간 나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중환자실 밖에는 많은 가족이 서성인다. 하루 두 차례 20분씩 주어지는 면회 시간을 기다렸다가 환자의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눈다.
늙은 아내의 흐트러진 머리를 올려주며 깨어나길 기도하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는 딸, 아들의 입가로 흐르는 침을 닦아주는 어머니…. 말은 들리지 않지만 환자 가족의 절규와 호소, 염원이 중환자실을 가득 메운다.
누워 있는 환자는 가족의 말을 알아들을까. 말없이 누워 있지만 말고 ‘아프다’는 호소라도 외쳐 가족이 겪는 고통을 줄여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김경애(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