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 35년간의 친일 청산작업을 해 민족정기를 구현한다는 데는 아무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작업은 최대한의 국민적인 합의와 동의를 바탕으로 해서 이뤄져야 한다. 국회의원 몇몇이 모여, 그것도 엄연한 반대 의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급히 단정하고 규정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민족정기 모임’이 학계나 관계 인사들간의 충분한 논의도 없이 왜 이 시점에서 서둘러 명단을 발표했으며 광복회가 선정하지도 않은 인사까지 ‘친일 반민족자’로 규정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이 작업에 참여한 의원들이나 전문가들 중에는 ‘민족정기 모임’의 발표에 이견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일제강점 35년간의 폭정 아래 살다 보면 누구나 우여곡절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서는 일제의 관료조직에도 근무하고 전쟁터로 끌려나가 천황만세도 불러야 했다. 우리의 현재 지도급 인사들 중에도 일본군국주의에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이 적지 않다. 일제가 최후 발악을 할 당시 성을 갈고 행적이 묘연했던 사람도 있다. 따라서 정말 친일 반민족 행위를 따지려면 공(功)과 과(過)를 정확히 재고 가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독립운동을 한 인사들이 중심이 된 반민특위는 48, 49년 그런 원칙에 따라 이미 ‘친일 반민족자’ 명단을 만들어 발표한 적이 있다. 그들은 같은 시기 독립운동을 한 인사들인 만큼 누구보다도 친일의 경중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광복회도 독립운동을 한 인사들의 시각이 정확하다고 판단해 당시의 친일파 선정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명단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젊은 세대인 ‘민족정기 모임’ 의원들은 광복회 의견까지 무시하고 반민특위 명단에도 없는 일부 인사들을 ‘친일 반민족자’로 단정했다. ‘민족정기 모임’이 아무리 3·1절을 계기로 삼았다고 해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조급히 발표를 한 데는 무슨 저의라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진정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일이라면 보다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검토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부 인사들의 편견이나 어떤 감정적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친일 반민족주의자’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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