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0…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10)

  • 입력 2002년 4월 28일 17시 39분


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 10

무당이 벽이 무너져내리듯 쓰러져 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울릴 장소가 없을 듯한 그 울음소리는 높아지지도 퍼지지도 않고 점차 목소리 자신으로 돌아갔다.

무당3 정말 미안하구나 니 앞에서는 당당할 수가 없구나 큐큐 파파 애비라고는 이름뿐이었지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어 큐큐 파파 너 어미 큐큐 파파 김미영은 살아 있나?

이신철 (무당과 유미리 사이에 시선을 두고) 살아 있습니다. 여든여덟 살이예요. 귀도 멀어서, 커다란 소리로 고함을 질러도 듣지 못하고, 노망이 들어 필담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 때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꼭 주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말은 한 마디도 틀리지 않아요.

무당3 옛날에 니 어미는 장독대 항아리 위에다 정안수를 떠놓고 두 손 모아 빌었는데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이신철 아버지와 헤어진 후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무당3 천주쟁이든 땡땡이(불교도)든 조상은 다 안 있나 큐큐 파파 너는 애비의 죽음을 알았나?

이신철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은 리비아에서 들었습니다. 저는 15년 동안 미 공군에서 일했거든요. 레이더 전문가로, 한국인으로는 유일한 통신대 소속이었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군축 정책으로 해고되었죠. 스위스, 스웨덴, 사우디아라비아, 이런저런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리비아에는 1976년부터 4년 동안 있었습니다.

무당3 애비와 헤어진 후에 니 어미와 너는 어떻게 살았나?

이신철 어머니는 미군 기지에서 허드렛 일을 하면서 저를 키웠습니다. 저도 열여섯 살 때 부터 정원사로 일하면서 야간학교에 다녔습니다.

무당3 아이고 고생만 시켰구나 정말 미안하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이신철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내내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지금도 맺힌 한이 다 가신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늘 저더러, 하느님의 자식이 되라고, 하느님의 마음이 평온한 것 처럼 너도 마음이 평온해지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해도, 제 마음에 쌓인 한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무당3 니가 애비에 대해서 뭘 아나!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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