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06…삼칠일 (5)

  • 입력 2002년 8월 23일 17시 58분


분노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려 눈을 떴다. 분노는 늘 첫닭보다 빨리 눈을 뜨고 나를 흔들어 깨운다. 희향은 분노로 굳은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아직 잠자고 있다. 머리숱도 꽤 많아졌고, 태어났을 때는 없었던 눈썹도 짙어졌다. 나를 닮은 것은 눈언저리 정도, 이렇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을 꼭 닮았다.

어제, 그 사람은 내 몸을 원했다. 그 사람이 적삼으로 손을 밀어 넣고 손바닥으로 젖가슴을 덮었을 때 옆으로 등을 돌렸는데도 그 사람은 등뒤에서 손을 뻗어 내 가슴을 애무했다. 그 여자의 가슴을 애무하고, 그 여자의 거기를 만지고, 그 여자의 무릎을 벌리고, 그 여자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던 손이다. 같은 손이다.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도 피부가 거부한다. 적삼을 걷어올리고 젖꼭지를 물었을 때, 끓어오르는 분노가 목에서 터져 나왔다. 그 사람의 무릎이 내 무릎을 비틀어 벌리고, 나는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리에 힘을 주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눈꺼풀 속 어둠에 호흡을 맞추고.

으-응, 아아, 아아. 꼭 쥐고 있었던 손을 펴고 무언가를 잡으려 하고 있다. 아아, 아아. 아직 눈은 뜨지 않았다. 오줌이나 똥을 싸서 기분이 나쁜 건지도 모르겠다. 희향은 베개에서 머리를 들고, 이불을 살며시 걷어내고 사타구니에 코를 갖다댔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슬슬 젖을 물린 시간인가! 몇 시간 전에 젖을 주었으려나? 이 아이는 한참 그 때 칭얼칭얼 울어댔다. 똥냄새가 물씬 풍기자 그 사람은 안방에서 나갔다. 그게 몇 시쯤이었을까? 똥을 닦아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물린 채 잠을 재웠다. 아직 어두웠으니까, 새벽 세 시 쯤이었을 거다.

우근아, 오늘은 너가 태어난 지 삼칠일되는 날이다. 너가 눈을 뜨면 엄마는 일나야 하니까, 그때까지 너 얼굴을 보고 있을게. 엄마는 오늘 엄청 바쁘다, 조금 있으면 할매가 도와주러 올 거다. 할매가 오면 먼저 금줄을 풀어서 강가에 나가 태워야 하고, 아침밥 지어서 너 아버지하고 형하고 누나 먹이고, 그라고 너를 목욕시켜야 한다. 그 다음에는 친척들하고 동네 사람들이 너 얼굴 보려고 다들 올 테니까, 치장을 해야제. 할매가 꼬까옷하고 포대기하고 만들어 놓았는가 보더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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