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경제가 발전할수록 문화산업의 규모가 커진다’는 진부한 명제의 속내를 잘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남는 시간이 많아진다. 도대체 남아도는 시간에 무엇을 하며 ‘킬링타임’을 할 것인가.
결국 대중문화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모차르트를 고용할 수 있을 만한 귀족이나 거부가 아니라면 저렴한 가격으로 재미를 주는 대중문화가 해답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주5일제 근무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킬링타임’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산업 전체로 보면 대중문화산업의 규모는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산업 전체가 잘 된다고 나도 잘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올해 우리 영화판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던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했으니까.
간단한 성공 사례를 보자.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 시리즈가 대박을 터뜨렸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다룬 책은 서점에 수도 없이 널려있다. 만화도 새로울 것이 없는 오래된 장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지닌 상품이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들은 ‘그래도 고전은 읽어야 하니까’란 마음으로 쉽게 지갑을 열고 애들은 만화니까 열심히 읽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의 한 음반회사가 클래식음악 CD로 떼돈을 벌었다. 대중가요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버린 클래식음악으로 돈을 번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것도 이유는 간단하다. 이 회사는 유럽의 무명 교향악단이 연주한 음원을 아주 싼값에 사들여 통상 음악 CD의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클래식 CD를 발매했다. 이 CD는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폭발적으로 팔렸다. 클래식 마니어라면 연주의 질에 불만이 있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어떤 문화상품이 히트한 이유를 알고 보면 대부분 별 것이 아니다. 천재의 발상이나 대규모 연구 조사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별것 아닌 것’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그런데 ‘별것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그것을 아는데 필요한 힌트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dragonkj@chollian.com
◇알림=문화평론가 김지룡씨가 집필하는 ‘문화와 산업’을 매주 금요일자에 연재합니다. 1964년생인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대학원 경영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필자의 주요 저서는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 ‘미치도록 재미있는 일본어’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