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1…1929년 11월 24일 (2)

  • 입력 2002년 10월 18일 18시 16분


“내 팽이가 제일로 잘 돈다”

“돌아라 돌아라”

“더 빨리”

얼음 위에서 팽이를 돌리는 남자아이들의 환성에 꽉 꽉 하고 백조의 울음소리가 섞였다. 얼음이 얇아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는 용두목 부근에서 백조 네 마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노닐고 있다. 어미 새 두 마리는 아직 털갈이가 덜 끝난 회색빛 새끼들을 선도하듯이 얼음 위를 미끄러지면서 검은 부리 끝으로 무명처럼 하얀 숨을 토해내고 있다.

두 시간 전과는 반대 방향에서 부산행 보통 열차가 뛰-하고 기적을 울리면서 모습을 나타내자 멍-멍- 개 짖는 소리가 온 동네로 울려퍼지고, 어미 새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커다란 날개를 펼쳤다. 긴 목을 앞으로 늘어뜨리고 힘차게 빠르게 날갯짓하여 몸을 띄우고, 날개 끝이 물에 닿을까말까 하게 물가를 활강한다. 오른쪽 날개를 내리고 선회하자 오른쪽 날개만 떨어져나간 것처럼 또렷하게 물에 비쳤다. 목을 20도 각도로 앞으로 뻗고 물갈퀴는 뒤로 뻗어 조금씩 고도를 높인다. 이제 그림자는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다. 펼친 날개를 수평으로 유지하고 높이높이, 용두산과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높이, 서로 겹치고 줄을 이루며 높이높이. 강가에서 올려다보면 두 마리 백조는 그림자처럼 거뭇거뭇하게 보이는데, 날개를 기울이고 선회할 때는 목의 옆면과 날개 끝이 하얗게 보였다.

백조들은 두 마리 새끼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서 고도를 낮춰, 물갈퀴를 앞으로 내밀고 다리를 쭉 뻗어 착수했다. 잠시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듯 날개를 펄럭이며 물방울을 사방으로 튕기고 앞으로 미끄러지면서 수면에 하얀 띠를 그리는데, 새끼들이 곁으로 다가와 목을 비틀고 부리를 날개 속에 집어넣자 목을 하늘로 뻗고 노래했다. 꽉! 꽉! 꽉! 꽉! 꽉! 꽉!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심상 소학교에서 수업이 끝났다고 치는 종소리가 백조들의 노래를 가로막았다.

감색 외투에 여우 목도리를 두른 일본 아이들이 강둑 너머에서 나타나 배다리를 건넜다. 그러나 조선 아이들은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고 일본 아이들 역시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밀양 심상 소학교와 조선 아이들이 다니는 밀양 보통학교는 걸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고 집이 서로 이웃한 아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이 한데 어울려 노는 일은 없었다. 배우는 국어는 같지만 학교와 놀이터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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