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6…1929년 11월 24일 (7)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06분


여자는 왼손으로 늑골을 잡아당긴 채 오른 손을 핏덩어리 속으로 집어넣어 칼날을 위로 향했다. 둥둥둥 둥둥둥, 날 끝으로 목을 가른다, 부리 바로 밑까지, 둥둥둥 둥둥둥, 손의 움직임이 멈춰지지 않는다. 뭐라고 소리를 내고 싶은데, 두 손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도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다. 성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는 간절히 바랬다.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에 바라는지 모르는 채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간청했다. 가슴과 등이 판자 같은 것 사이에 끼여, 그것이 점점 더 세게 밀고 올라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여자는 암탉의 몸통 안에 손을 쑤셔 넣고 늑골에 들러붙어 있는 폐를 뜯어내 대야에 버렸다. 이건 못 먹겠다. 밥주머니도 떼어냈다. 이것도 못 먹겠고. 심장과 간은 챙겨둔다. 이거하고 이거는 먹을 수 있고. 여자는 살며시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어 아직 맥박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내장을 천천히 풀어냈다. 둥둥둥, 손가락에 기묘한 따스함이, 끈적끈적, 생명 그 자체의 온기가 김이 되어, 둥둥둥, 여자는 암탉의 내장을 손바닥으로 떠냈다. 둥둥둥 둥둥둥, 내장을 고스란히 덜어낸 암탉 안에는 피투성이 알이 구르고 있었다. 껍질의 보호도 난백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헐벗은 난황이, 탁구공 만한 것이 하나, 밤톨 만한 것이 둘, 콩알 만한 것이 넷, 아이고, 더 작은 것도 구더기처럼 우글우글! 여자는 쌀알 만한 난황을 핏덩어리와 함께 떨어냈다. 칼은 손잡이도 날도 피에 젖어 있다. 아이고, 누굴 죽인 것 같다! 아이고, 누굴 죽인 것 같다! 누굴 죽였지? 누굴 죽이고 싶은 거지? 둥둥둥 둥둥둥, 고무신 속 맨발에도 피가, 뜨뜻미지근하고 끈적한 피가, 둥둥둥 둥둥둥, 여자는 똥집을 절반으로 갈라 껍질을 벗기고, 안에 꽉 차 있는 찐 좁쌀 같은 모래를 떨어냈다. 바가지로 우물물을 퍼서 피와 모래를 씻어내자 군데군데 희멀건하고 군데군데 누런 그 하얀 장기는, 바닷속의 눈 없는 생물처럼 지금이라도 헤엄칠 것 같았다. 둥둥둥 둥둥둥, 여자가 암탉을 안아 올려 놋대야에 담그자, 물이 항아리 속 김치처럼 뻘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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