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프랑스어로 크리스마스라는 뜻)이 예수님의 생일잔치라는 사실은 점점 잊혀지고 상업적인 축제의 껍데기로만 남게 됐다고 세태를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파리의 12월은 여느 때보다 2000년 전 인자(人子)께서 남겨주신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파리 7구 봉마르셰 백화점 앞에선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프랑스 2TV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돕기 생중계 행사인 ‘텔레통’ 프로그램에서는 ‘8500만유로나 모금해 기록을 세웠다’고 떠들썩하다.
17년 전 집 없는 걸인들을 돕기 위해 ‘콜뤼쉬’란 한 코미디언이 시작한 ‘사랑의 레스토랑’ 행사에도 변함 없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말없이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사랑의 나눔에 인색한 채 개인적 성공만을 생각하고 정신 없이 앞으로만 치달아왔던 사람들이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문득 ‘도대체 성공한 삶이 뭐기에…’라고 자조와 푸념 어린 질문을 내뱉으며 한번쯤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철학자 뤽 페리의 최신작 ‘성공한 삶은 무엇인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저자의 깊은 성찰이 담겨있는 ‘지혜의 책’이다. 현대사회에서 ‘성공의 의미’는 주로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효용성이란 두 잣대로 측정되지만 저자의 말대로 ‘삶의 성공’이 근원적으로는 ‘소유의 문제’보다는 ‘존재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면 결국 ‘성공적 삶’에 대한 질문은 ‘행복한 삶’의 의미를 규명하는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다.
균형 잡힌 시각과 능숙한 필체로, 뤽 페리는 인류 역사 속에 비친 ‘행복한 삶’의 다양한 모습을 고루 탐색하고 있다. 서구사회가 발전시켜온 ‘도구적 이성’만으로는 ‘행복의 조건’을 규명해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뛰어넘어 기독교의 ‘초월성’과 ‘구원’의 전통적 개념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만 올바른 인간 탐구의 조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행복의 외양은 다양하게 바뀔 수 있지만 ‘사랑’ 및 ‘실천적 행동’과 같은 불변적 가치들은 항존하며 결국 ‘행복한 삶이란 우리 내부에서 치열하게 선택된 개인적 산물’임도 잊지 않고 있다.
‘영적(靈的) 휴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신인문주의적 세계관을 제안하는 실존적 휴머니스트, 이 세상에 ‘환상 없는 마법’을 걸기를 소망하는 마법사(?), ‘늘 투명한 의식 속에 깨어 있기를 원하는 철학자’, 뤽 페리의 책은 세밑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이미 여러 베스트셀러 철학에세이를 출판한 그는 현재 라파랭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다.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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