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亞 내셔널 어젠다위 제안]김민전/제도의 조화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8시 57분


제도 개혁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간의 조화, 또는 조응성(調應性)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용 과정에서 다른 제도와 충돌해 전체 시스템을 고장나게 한다면 그 같은 제도는 없는 것만 못하다.

제도 개혁을 서둘다보면 졸속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올 정기국회에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은 총 118건. 11월14일에 4건, 11월12일 47건, 11월8일 34건, 그리고 11월7일 33건으로 4일 만에 118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이렇게 무더기로, 그것도 졸속으로 처리하다 보니 법안 전체 맥락, 다른 법률과의 관계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뒤따르지 않아 앞뒤 법률 조문이 맞지 않거나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지기도 한다. 법을 개정하자마자 또 다시 개정하는 악순환은 그래서 생긴다.

조세특례제한법의 경우 1965년 제정된 이후 37년 동안 116회, 한해 평균 3차례씩 개정됐다. 지방세법과 소득세법도 70회 이상 개정됐다. 정부조직의 근간이 되는 정부조직법도 55회나 개정됐다.

국회운영도 마찬가지다. 국회법은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위원회, 목요일에는 본회의를 열도록 하고 있지만 위원회도 본회의도 열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률의 심도 있는 심의를 위하여 전원위원회를 도입하고 있지만 한번도 개최된 적이 없다. 또 제정이나 전면개정 법안에 대해서는 입법공청회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수렴 없이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각종 이익단체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잦은 법 개정은 법 준수 의식을 저하시켜 법은 개정돼도 실제는 바뀌지 않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조사한 ‘준법의식 실태조사’에 의하면 ‘법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25.3%에 달했다. 이는 법의 집행뿐만 아니라 내용과 제정 절차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대단히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1.5%가 법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67.6%가 ‘법 제정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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