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15…몽달귀신(17)

  • 입력 2003년 1월 10일 19시 18분


코멘트
인혜는 고개를 들고 벽시계를 보았다.

“섰습니다”

“참말이네, 시계가 섰네”

“…어머니, 시계 태엽 좀 감으이소”

“…지금이 몇 신공?”

“어머니, 가게 벽에 시계 걸려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시간을 기억해 둬야지예”

완선은 일어나 건넌방에서 나갔다. 한숨 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는 시계가 도움을 청하듯 인혜를 내려다보고 있다. 출산도, 태어나고 자란 집이 아닌 건넌방에 누워 있는 것도, 이 집에 친정어머니가 있는 것도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그리고 아가씨가 죽었다는 것도, 쓰러진 나무에 기대듯 떠 있었던 시신이 떠오를 듯하여 인혜는 시계에 눈을 맞추고 초를 세기 시작했다. 똑 딱 똑 딱 아가씨가 돌아오지 않은 그 다음날부터 태엽을 감지 않았다, 똑 딱 똑 딱, 매일 점심밥을 짓기 전에 꼭꼭 감아주었는데, 똑 딱 똑, 하지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움직이고 있었다, 똑 딱 똑, 열한시 반이면, 똑 딱, 내가 아가씨를 발견한 순간? 그 순간에 포박당했을 때, 완선이 돌아왔다.

“세시 2분 전이니까, 세시에 맞춰두면 되겠제”

완선이 시계의 유리문을 열고 나비 모양의 열쇠를 꽂아 태엽을 감고 추를 좌우로 움직이게 하자 딱, 하고 손톱이라도 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땡 땡 땡 종이 울리고, 길게 울리는 여운 속에 시계는 똑 딱 똑 딱 평정을 가장하고 다시 때를 새기기 시작했다. 똑 딱 똑 딱 똑 딱, 소리를 듣다 보니 머릿속이 잠기운으로 끈적해지고, 인혜는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얕은 잠 속으로 꿈이 스며든다. 물보다 차가운 피부, 파란 정맥이 도드라진 조그만 젖가슴, 어째서인가 자신도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눈물은 흐르지 않는데 목메어 울고 있다. 그것은 눈을 뜨고 입술을 벌린다. 희뿌연 안구에서 눈물처럼 부슬부슬 구더기가 떨어지고, 입에서는 산천어가 튀어나온다. 인혜는 절규한다. 고막은 떨리는데 목구멍과 혀가 굳어 감각이 없다. 아가씨가 내 귀를 입으로 막고 소리치고 있다! 인혜는 머리를 세게 흔들고, 손으로 귀를 두드리면서 외친다. 아-! 아-! 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