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으로 옮겨오는 미국 주류사회 예술인들이 점차 늘어가는 것도 새로운 현상.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할리우드 볼, 게디 뮤지엄 등이 불과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지만 부동산 가격은 인근 부촌인 브렌트우드, 베벌리힐스 등보다 훨씬 저렴하다. 코리아타운의 입지조건에 착안한 건설업체들이 고급 아파트를 타운 내 속속 세우고 있어 조만간 예술인촌으로 탈바꿈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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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이민<3>]한국魂 알린다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박기영 교수(인류학)는 “이민 1세들끼리 어울리는 ‘앙클레이브(enclave·소수문화 집단거주지)’였던 코리아타운이 이제는 미국인 동료교수들도 즐겨 찾는 휴식 및 문화공간이 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리아타운 내 유명 음식점들은 며칠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중상류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한인단체들의 정치 경제적 활동은 더욱 두드러진다. 남가주한인노동상담소(KIWA), 한국민족학교(KSC), 한미연합회(KAC) ‘4·29센터’ 등은 과거 1세대 단체들과는 달리 1.5세와 2세들이 이끌어가며 다른 소수민족과의 연대 및 주류사회와의 융합을 목표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KAC는 올해 안으로 미 연방의회 내에 ‘코리안 코커스(Korean Caucus)’를 구성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로비하고 있다. ‘코커스’란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상·하의원들이 의회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
KSC도 다른 소수민족들을 위한 권익신장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불법이민자를 부모로 둔 2세들이 영주권자로서의 합법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드림 액트(Dream Act)’ 운동은 그중 하나다.
4·29센터의 존 유 소장은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성장은 1992년 ‘4·29폭동’이 전환점이었다”고 진단했다. 이를 계기로 코리아타운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한인들의 자체 홍보도 활발해졌다는 것.
주류사회에서 관심이 커지기는 로스앤젤레스에 버금가는 뉴욕 코리아타운도 마찬가지.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32번가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맨해튼 코리아타운은 주로 한국인 유학생들과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다.
최근에는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관광지도에 ‘Korea Town’이 표기됐고 32번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4가 거리에는 ‘Korea way’라는 이정표가 들어섰다. 한인식당 ‘금강산’의 지배인 브라이언 은(30)은 “한국 음식에 반한 외국인 손님이 전 손님의 4분의 3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맨해튼 코리아타운이 ‘즐기러’ 찾는 곳이라면 뉴욕시 한인의 25%가 모여 사는 맨해튼 동쪽 퀸스시 플러싱은 한인들의 ‘생활터전’이다. 변천수 전 플러싱 한인회장은 “1990년대 들어 중국인들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상권은 여전히 한인들 차지”라며 “맨해튼보다 물가가 싸 한인들이 쉽게 생활터전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한인 이민이 몰려든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이 코리아타운을 형성한 반면 100년 전 한인이민의 관문이었던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는 딱히 코리아타운으로 부를 만한 곳이 없다.
1920년대 한인타운이 샌프란시스코에 형성됐고 1936년까지 대한인국민회 총본부가 샌프란시스코에 있었지만 2000년 미 정부 인구조사에 따르면 한인 인구는 5만7386명에 불과하다. 물가도 비싸고 연대기반이 취약해졌기 때문.
하와이 역시 1970년대 이후 한인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쇼핑가 식당들이 중심가인 칼라카우아 거리에 몰려 있지만 타운으로 부르기엔 멋쩍은 수준. 김창원(金昌源)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장은 “하와이 한인들은 이미 3, 4세까지 이어져 미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됐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번듯한 한인 거주지로 성장한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의 코리아타운도 그 명맥을 더 발전적으로 유지하려면 할 일이 태산 같다.
‘코리아타운’ 하면 딱히 떠오르는 상징물 등이 아직 없다는 것도 과제 중의 하나.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미주한인이민100년사(한미동포재단·미주한인이민100주년남가주기념사업회 출간)’도 주류사회의 관심을 담아내지 못한 채 한국어로만 출판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칼스테이트 대학의 유의영 교수(사회학)는 “코리아타운은 특이한 카페, 옷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밤에도 안전하게 산책이 가능한 인근 로스앤젤레스의 멜로즈 거리와 같은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업소 노동자 권익보호 아레돈도 변호사▼
“남들은 ‘왜 사서 고생이냐’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아니라면 변호사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일하는 스티브 아레돈도(29·사진)는 로스앤젤레스 로욜라 로스쿨을 졸업한 전도 유망한 변호사. 그러나 그가 걷고 있는 길은 대학동창 등 다른 법률 전문가들이 좇는 ‘성공’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그가 매일 출근하는 곳은 한인타운 8가에 있는 남가주한인노동상담소(KIWA). 허물어질 것 같은 2층 낡은 건물의 2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에는 고용주들의 횡포에 시달리다 못해 찾아온 불법이민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로펌에 입사한 동창들은 시간 단위로 상담료를 챙기지만 KIWA 상임변호사인 그의 법률상담은 완전 무료. ‘눈물과 분노로 뒤범벅이 된’ 불법이민자들의 호소를 듣다보면 금세 퇴근시간이 돼버린다.
KIWA에 몸담은 지 4년째지만 마음 편하게 휴가 한번 다녀오지 못했다. 비영리단체인 KIWA에서 받는 연봉은 동료 변호사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아버지와 삼촌 모두 멕시코에서 넘어온 불법이민이었습니다. 별다른 기술도 없어 숨막히는 페인트 공장에서 수십년간 일해야 했죠. 두 분 모두 호흡기 질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철 들어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지켜본 아레돈도씨에게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불법이민자들의 인권을 합리적으로 싸워서 지킬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법률가의 길이었다.
KIWA는 로스쿨 재학 시절 만났다. 소수계 이민자들의 권익보호를 내세운 활동에 눈길이 갔다. 그의 한국계 부인도 로스쿨 동문이다.
요즘 그는 한인 업소에서 일하는 남미계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매달리고 있다.
“일부 한인 고용주들은 자신의 가게나 식당에서 일하는 멕시코계 이민들을 ‘멕작’이라고 비하하거나 주방에서 국자로 때리기까지 합니다. 자신들이 아시아계 소수 이민자들인데도 스스로를 ‘백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도 남미계 불법이민자들은 신분이 들통날까 봐 미국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임금(시간당 6.75달러)도 못 받고 휴식, 식사시간도 없이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일들을 방치하면 1992년 흑인들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을 짓밟았던 악몽이 남미계 이민자들에 의해 재현될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생활수준이 아무리 나아져도 한인들은 여전히 소수계 이민입니다. 미국에서는 소수민족끼리 목소리를 합쳐야 권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남미계 이민자는 한인 이민자의 권익 찾기에 동참할 소중한 ‘자원’입니다.”
그의 말이 앞으로 한인타운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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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홍권희 뉴욕특파원 konihong@donga.com
박래정 국제부기자 ecopark@donga.com
김정안 국제부기자 credo@donga.com
김선우 사회1부기자 sublime@donga.com
강병기 사진부기자 arch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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