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계의 고수(高手)들이 현재의 기업환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제시해온 다국적 컨설팅그룹 대표들은 말을 아끼기로 소문난 사람들.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
▼채수일대표▼
△1963년 서울 출생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전자공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원 MBA
△1993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보스턴 본사 입사
△2001년 BCG 서울사무소 대표
△금융전략 담당
▼이성용대표▼
△1961년 서울 출생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 포인트)
수석 졸업
△하버드대 MBA
△미국 국방부,
AT커니 컨설팅사 근무
△2002년 베인&컴퍼니 코리아 대표
△금융·정보기술 전략 담당
어렵사리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의 채수일(蔡洙一) 대표와 베인&컴퍼니 코리아의 이성용(李成容) 대표가 만났다.
국내 ‘빅3’ 전략 컨설팅업체 중 두 회사의 대표인 이들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 묵직한 주제 때문에 그런지 두 사람은 으레 오가는 덕담도 제대로 못 나눈 채 얘기를 시작했다.
미국 출장에서 막 돌아온 이 대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국에서 CNN방송을 보니까 한국에서 곧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더군요. 오죽하면 미국에 사는 부모님이 한국에 돌아가지 말라고 그러셨겠어요. 그런데 이곳에 오니까 또 별일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완전 면역이 돼서 그런지….”
역시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채 대표도 무슨 얘긴지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사실 그게 문제지요. 한국에 진출해 있는 많은 외국기업들의 투자 결정은 외국 본사에서 내리잖아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외국인투자가들은 새 정부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불안 요소로 언급하더군요.”
최근 인수위가 속속 내놓고 있는 개혁 방안으로 얘기가 이어지자 두 사람은 ‘시장 원칙’을 강조했다. ‘시장의 힘’이 최대한 보장돼야만 나중에 개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해체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부서를 없앤다고 해서 그 기능이 사라질까요. 한국 대기업은 어느 정도 ‘코디네이션(조정)’을 담당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채 대표는 새 정부에 좀 더 구체적인 주문을 했다. 개혁의 핵심 원칙을 3, 4개로 추려서 서둘러 밝혀 달라는 것.
“사실 새 정부가 내건 개혁 정책의 대부분은 외국투자자들이 크게 걱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과잉 우려’라고도 볼 수 있죠. 이런 불필요한 걱정을 해소하려면 원칙을 제시해야 합니다. ‘시장원칙 준수’ ‘공정한 사회정책 수립’과 같은 원칙들은 평범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국내외 시장에 던지는 효과는 큽니다.”
두 사람은 기업 경쟁력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비효율성이 많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전략적 자유(Strategic Freedom)’가 적습니다.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정부의 규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컨설턴트들은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는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전 회장 같은 탁월한 경영인이 나올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런 경영인을 키울 만한 사고의 자유가 없다는 거죠.“(이 대표)
“우리나라 기업 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킨 일만 잘하기’입니다. 직원 스스로가 판단하고 자기 규율에 따라 일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임원이 되면 부하들을 이런 식으로 다룰 줄만 알고 경영진으로서 임무를 못합니다.”(채 대표)
각 기업이 10년 후에 먹고 살 ‘미래산업’을 찾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런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 있냐고 묻자 두 사람은 “그런 산업이 있으면 나부터 알고 싶다”면서 웃었다.
채 대표의 얘기는 “첨단산업을 미래산업으로 보지 말라”는 것. 자동차, 가전, 통신 등 기존 산업의 미래 잠재력과 발전 방향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이 바로 미래산업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지금의 기업 여건상 미래산업을 따지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면서 “손익계산서가 최우선인 이 시대에 2, 3년 앞을 내다본 투자도 결정하기 힘든데 어떻게 10년 후를 점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업환경이 어수선해지다보니 컨설턴트들도 바빠지기 마련. 얘기가 끝난 후 두 사람이 꺼두었던 휴대전화를 켜자 곧바로 벨이 울려댔다. 둘은 “빨리 고객들을 만나러가야 한다”면서 총총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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