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쇼핑몰 등 최첨단 판매기법이 일상화된 지금도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방문판매는 전체 매출액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더구나 태평양의 방문판매 비중은 매년 커져가고 있다.
화장품, 보험, 자동차 등은 전통적으로 방문판매가 강한 분야. 요즘은 정수기, 비데, 건강식품 등도 방문판매 대열에 뛰어들었다.
가가호호 문을 두드려야 하는 원시적인 판매형태가 21세기에도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문불여일용’(百聞不如一用)〓가정용 정수기 1대의 가격은 약 100만원.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도 선뜻 사기에는 부담스럽다.
웅진코웨이개발 송형배 본부장은 “일단 무료로 정수기를 써 보라”고 권유한다. 제품이 뛰어나면 고객이 스스로 고른다는 것.
2주간 무료로 사용한 후 고객이 살지 말지 망설이면 그때서야 제품 설명에 들어간다. ‘5인 가족이 생수를 먹는다면 1주일에 20ℓ 생수 2, 3통이 필요하다. 한 달이면 5만원, 1년이면 약 60만원이다. 2년이 채 지나기 전에 정수기 1대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삼성증권 정순호(鄭純昊) 수석연구원은 “방문판매 제품은 대부분 고가라서 단번에 사기가 부담스럽다”며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제품을 미리 사용해보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정수기 방문판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성급하게 물건을 팔려 하지 마라〓대한생명 서대문법인영업소 정태웅 팀장은 요즘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시험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종합자산관리사(FP), 종합재무설계사(AFPK) 자격증을 따놓았다.
“보험은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무상담과 노후설계를 도와주는 것이지요.”
제품을 팔려고 든다면 백전백패라는 게 정 팀장의 지론. 상대방의 재무상태에 맞춰 하나하나 컨설팅을 해 주면 자연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화장품 방문판매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파트 부녀회를 통해 화장품 이벤트를 열 때 자사제품 선전은 하지 않는다. 대신 피부미용과 주름살 제거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가능하면 무료 마사지까지 해 준다.
공짜로 재무상담을 받을 수 있고 미용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회사 제품을 사용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고객 저항을 극복해라〓한번 설명을 듣고 제품을 사는 고객은 없다. 제품 판매과정에서 꼭 저항이 생기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정수기 설명을 들은 한 고객이 “물은 끓여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굳이 비싼 정수기를 살 필요 있나요?”라고 되묻는 경우다.
이때를 대비해 송 본부장은 각종 신문 스크랩 자료와 논문발표 자료를 준비해 다닌다. ‘물을 끓이면 세균은 죽더라도 유해물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혹은 간단한 실험을 제안하기도 한다.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하루 뒤에 살펴보라는 것. “상수도 시설이 낡았기 때문에 100% 녹이 가라앉는다”고 송 본부장은 주장한다.
고객의 저항이 워낙 다양한 만큼 저항을 처리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태평양화장품 김경희 서울 은평구 수석지부장은 비밀무기인 고급 화장품 샘플을 꼭 가지고 다닌다. 단체 마사지를 하다보면 ‘화장품이 비싸기만 하지 별로…’라며 훼방을 놓는 고객이 있기 때문. 그를 입막음하는 데는 샘플을 안겨주는 게 최고다.
▽원시적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판매방법〓한양대 경영학과 한상린(韓相璘·42) 교수는 “미국과 유럽은 방문판매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한국은 오히려 늘고 있다”며 “정(情) 중심적인 사회문화와 전문화된 방문판매 기법이 인기를 뒷받침하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가 꼽은 방문판매의 전문성은 효과적인 대상선정, 자세한 제품설명, 지속적인 고객관리 등.
그는 또 “핵심은 제품력”이라며 “상품이 부실하면 눈속임으로 한번은 팔 수 있더라도 2차 구매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화장품 업계를 담당하는 삼성증권 한영아(韓榮娥) 애널리스트도 “방문판매의 성장 가능성에는 중장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현재는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1 대 1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방문판매의 전망을 ‘단기적 맑음’으로 내놓았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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