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사회문화여성분과 정영애(鄭英愛) 인수위원은 3일 기자와 만나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의 공약대로 호주제는 폐지하고 그 대안으로 개인의 신상과 배우자 및 자녀의 주민등록번호 등만 간략하게 기재하는 1인1적제가 최적이라는 데 인수위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또 “최근 여성부의 업무보고에서 호주제의 대안으로 부부 단위로 호적을 정리하는 가족부(家族簿)도 검토했으나 여성의 경우 이혼 등 신분 변동이 일일이 기재돼 호주제에서 받는 불이익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1인1적제는 그동안 여성단체 등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이라는 시대정신에 가장 부합한다”며 도입을 주장해왔으나 법무부와 유림(儒林) 등에서는 “전통적인 가족제의 가치를 흔들 수 있다”며 반대해 온 제도여서 큰 논란이 예상된다.
정 위원은 “1인1적제를 실시하려면 비용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호적전산화가 끝나 큰 문제는 안될 것”이라며 “호주제 폐지는 국회의 입법 사안으로 앞으로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1人1籍제도’ 무엇인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호주제의 대안으로 추진 의사를 밝힌 ‘1인1적(一人一籍)제도’는 개인마다 자신의 호적을 따로 갖는 ‘개인별 신분 등기제’이다.
현행 민법상 호주제는 관념적 가족단체인 ‘가(家)’를 상정해 호주(戶主)와 호주 승계 순위를 규정함으로써 부계혈통만을 중시해 남아선호와 성차별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1인1적제가 도입될 경우 부부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개념이 완전히 사라지며 사회구성의 기본단위도 ‘가족’에서 ‘개인’으로 변하게 돼 사회 문화적으로 큰 충격과 파장이 예상된다.
▽1인1적제와 가족부제=1인1적제란 미국 유럽 등 서구에서 채택하고 있는 호적 편제로 출생과 동시에 한 사람이 하나의 신분등록부를 가지며 혼인으로 통합되지 않는 방식이다.
신분등록부에는 개인의 출생과 혼인 등 신분관계의 변동과 공시기능을 살리기 위해 배우자와 자녀의 주민등록번호 등 간단한 신원만 병기된다.
여성계에서는 △신분등록지와 주거지가 일치하며 △현행 호적제도와 같은 공시기능을 달성할 수 있고 △여성차별의 문제가 없고 △재혼이나 입양 등을 통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가족부(家族簿)란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되는 핵가족별 호적 편제로 여성부가 호주제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가족부는 △혼인 무효시 이전 호적으로 복적되며 △재혼시 재혼하는 사람이 배우자와 함께 새 호적을 만들고 남은 배우자는 기존 호적을 유지하며 △자녀 출생시는 부모 호적에 입적하고 기혼 자녀는 배우자와 새 호적을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측은 “호주제하에서 신분노출로 고통받고 있는 이혼가족 자녀나 사실혼의 문제 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며 가족부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파장과 전망=1인1적제가 도입될 경우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혁명적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
장성자(張誠子) 여성부 여성정책실장은 “1인1적제는 남녀차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요즘의 정서를 잘 반영한 제도”라며 “그러나 사회의 기초단위가 개인으로 변하기 때문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현재는 호적상 부양자가 있는 경우 기초생활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호적이 따로 관리될 경우 국가가 개인별로 생계 책임을 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구 단위로 부과되는 세금체계도 완전히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1인1적제가 조기 도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 유림측의 반대로 입법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1997년 위헌 판정을 받은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아직까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또 1인1적제 도입에 따른 재정 문제도 관건이다. 현재 호적전산화가 이뤄져 있지만 전 국민의 호적을 개인별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산시스템을 완전 개편해야 하는 등 엄청난 인적 물적 경비가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