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스포츠 포크댄스 국악 노래 해맞이춤 부채춤…. 이씨가 여기서 배운 놀이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푹 빠졌다. 이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여.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놀려는 자세가 필요하당께”라며 미소지었다. 이씨는 하루에 1000원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종구(李種九·74·경기 시흥시 대야동)씨는 매달 회비로 3000원을 내는 회원 185명의 게이트볼 동아리 ‘보스’다. 처음에는 게이트볼이 동아리의 구심점이었지만 지금은 노년에 만난 절친한 친구모임으로 바뀌었다.
최소한 1년에 3번은 흥겨운 여행을 떠난다. 회비만으로는 여행 경비가 빠듯해 약간의 쌈짓돈을 갹출하지만 대부분 만족한다.
이씨는 “운동하고 여행 다니고 친구 사귀고…. 일석삼조(一石三鳥)가 따로 있나”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많은 노인들이 ‘노인생활’을 즐기고 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처럼 부지런한 노인들이 놀이문화를 찾아다닌다. 이들은 생계와 자식 걱정으로 그동안 가슴에 묻어야 했던 여가생활을 뒤늦게 즐기고 있다. 무료 강좌나 프로그램을 일일이 기록해 가면서 ‘잘 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노인들이 이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노인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노인복지관이 잘 갖춰진 대도시는 그나마 나은 편. 지방으로 갈수록 동네 경로당이 유일한 놀이공간인 경우가 많다. 노인들은 여기서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때로는 화투장을 만지며 시간을 보낸다.
복지관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거나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뛰쳐나가는 노인도 많다. 서울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에서는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술을 마신 뒤 드잡이하며 얼굴을 붉히는 광경도 자주 눈에 띈다.
노인복지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전국적으로 자치단체에서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노인복지관은 114개로 시군구당 0.5개 정도에 불과하다. 크고 작은 사설 노인복지시설은 600여개 정도. 400만명에 육박하는 노인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복지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주변 사람에게 알음알음 물어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 그러다 보니 내성적인 노인들은 놀이문화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취약한 경제력은 노인의 여가를 방해하는 큰 걸림돌이다. 많은 노인들이 “한달 용돈이 10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복지관의 점심 식대가 1500∼2000원이나 돼 이용을 꺼리게 된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사 송화진(宋華珍·여)씨는 “놀이문화에서 소외된 노인들을 모두 끌어안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선진국처럼 동사무소 등 최소 행정단위에서부터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놀이문화는 천천히 확대되고 있다. 젊은이 못지않은 투지를 보이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가 하면, 젊었을 때의 지식과 경험을 살려 새로운 문화를 개척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서울 서초노인종합복지관에서 보배 같은 존재인 정봉운(鄭奉運·68·서울 서초구 신원동)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정씨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타악기 ‘앙크룽’을 복지관에 보급시켰다. 대기업에 있을 때 현지에서 근무하면서 배운 게 인연이 돼 퇴직 후에 동아리를 만든 것.
‘일본박사’ 정연심(鄭連心·74·서울 강남구 포이동)씨는 10여명을 회원으로 끌어들여 일본에 관한 공부를 주도하고 있다. 이 동아리는 매주 수요일 2시간씩 일본어로 토론을 한다. 일본문화원도 찾아가고 일본영화도 감상한다. 이근식(李根植·77·인천 부평구 부평동) 김금숙(金今淑·68)씨 부부는 1년 전 수화(手話)를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에 봉사한다는 보람까지 겹쳐 희열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지완(芝완) 관장은 “노인들의 놀이 및 여가문화에 대한 지원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즐거운 놀이문화는 치매를 예방하고 여생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더욱 활발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전국주요 노인복지회관의 놀이 프로그램 | |||
지역 | 복지관 | 프로그램 수 및 종류 | 문의전화 |
서울 | 노인복지센터 | 100개(게이트볼,풍수지리,컴퓨터 등) | 02-739-9501 |
서초복지관 | 37개(앙크룽,일어,영어노래 등) | 02-578-1515 | |
구로복지관 | 50개(컴퓨터,고전무용,가요교실 등) | 02-838-4600 | |
부산 | 부산복지관 | 18개(스포츠댄스,단전호흡,수지침 등) | 051-853-1872 |
어진샘복지관 | 50개(단전호흡,고전무용,스포츠댄스 등) | 051-784-8005 | |
대구 | 대구복지관 | 22개(스포츠댄스,서예,탁구 등) | 053-766-6011 |
광주 | 서구복지관 | 11개(스포츠댄스,고전무용,컴퓨터 등) | 062-366-1753 |
광주공원복지관 | 15개(전통춤,요가,컴퓨터 등) | 062-671-3370 | |
인천 | 남구복지관 | 30개(스포츠댄스,노래교실,서예 등) | 032-864-2502 |
연수구복지관 | 23개(노래교실,장수체조,단학수련 등) | 032-811-2660 | |
대전 | 동구복지관 | 40개(한문, 댄스스포츠, 단전호흡 등) | 042-626-2736 |
서구복지관 | 35개(컴퓨터,건강댄스,고전무용 등) | 042-488-6298 | |
울산 | 울산복지관 | 19개(장구,포크댄스,에어로빅 등) | 052-292-4830 |
경기 | 일산복지관 | 70개(컴퓨터,어학,실버밴드 등) | 031-919-8677 |
수원청솔복지관 | 15개(스포츠댄스,문화재답사,수지침 등) | 031-257-1396 | |
강원 | 춘천복지관 | 40개(스포츠댄스,사물놀이,건강체조 등) | 033-255-8866 |
경남 | 진주복지관 | 10개(레크리에이션,민요,가요교실 등) | 055-749-2497 |
경북 | 예천복지관 | 13개(단전호흡,국악,수지침 등) | 054-654-5222 |
충북 | 청주복지관 | 22개(한글, 컴퓨터, 국악 등) | 043-255-2144 |
충남 | 홍성복지관 | 10개(서예,국악,단전호흡 등) | 041-631-0960 |
전북 | 전주안골복지관 | 26개(스포츠댄스,고전무용,컴퓨터 등) | 063-243-4377 |
여수복지관 | 19개(재즈댄스,민요,가요교실 등) | 061-685-2381 | |
제주 | 제주복지관 | 5개(발마사지, 노래, 동화구연 등) | 064-758-0444 |
▼노후의 즐거운 취미생활 젊었을때 준비하기 나름▼
이제 여가문제는 생활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하루 대부분이 여가시간이랄 수 있는 노인에게 적절한 여가활동은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노인들은 오래 전부터 여가활동을 충분히 즐기며 살아왔다. 여기에는 젊은 시절부터 여가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준비한 전통이 큰 도움이 됐다.
독일에서는 1953년부터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정부가 앞장서서 각종 스포츠시설과 여가프로그램들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01년 현재 8만6000여개의 스포츠클럽에 2700만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노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케켈클럽’(케켈은 일종의 볼링경기)이나 ‘부부댄싱’은 무척 오래된 동호회이다. 노인들에게 스포츠클럽은 체력단련과 취미생활은 물론 사교를 위한 장소로도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아울러 독일에서는 마을이나 지역단위마다 한국의 마을회관과 비슷한 ‘게메 인데하우스(Geme indehaus)’가 있다. 운영비는 자치단체에서 전액 부담한다.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노인이 더 늙은 노인을 돕는 게 일상화돼 있다. 서로 처한 현실에 걸맞게 도움을 줌으로써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자는 것이다. 미국에서 노인은퇴자협회(AARP)나 은퇴전문가봉사단(SCORE)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6개의 비영리 민간복지단체에서 170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여가를 즐기며 봉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서구 노인들은 일찍부터 여가문화나 봉사활동이 몸에 뱄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여가활동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다.
결국 노후에 여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소득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전통과 문화풍토라고 할 수 있다.
평생 연극이나 영화 한 번 보지 않던 사람이 시간과 돈이 있다고 극장에 가는 것은 아니다. 노인의 놀이문화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재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다음, 혹은 그 다음 세대가 노인을 됐을 때를 대비해 미리부터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하며 노인 스스로도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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