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배극인/'게놈지도'에 얽힌 기업희비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21분


미국의 생명공학 벤처업체인 셀레라지노믹스(Celera Genomics)는 11년간의 연구 끝에 2001년 2월12일 인간 설계도인 게놈 지도를 완성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회사입니다.

하지만 2000년 2월 250달러까지 치솟았던 이 회사 주식은 바닥을 헤매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현재 주당 9.66달러에 불과하죠.

이 회사가 이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된 것은 바로 ‘인간’ 때문입니다. 게놈 지도를 완성한 결과 애초 10만개 정도로 예상되던 인간 유전자 수가 파리의 2배 정도인 3만400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쥐의 유전자도 2만7000여개이고 원숭이도 인간과 별 차이가 안 납니다.

이게 왜 문제냐고요? 생명의 원천은 단백질인데 애초에 과학자들은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유전자 하나당 한개 씩 생산되는 걸로 믿었었습니다. 때문에 유전자만 해독하면 인간이 만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생명에 관계된 단백질 수에 비해 유전자 수가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결국 몇 개의 유전자가 순열과 조합을 통해 복합적으로 단백질을 형성한다는 결론이 난 거죠.

문제는 바로 이겁니다. 단백질 형성 조합을 해독하려면 슈퍼컴퓨터를 돌려도 10년 이상 걸린다는 겁니다. 게놈 지도를 통해 당장 신약을 개발할 수 없게 된 거죠. 셀레라지노믹스 주가가 추락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셀레라지노믹스가 처음 게놈 지도를 해독했을 때만 해도 과학 전문지 ‘네이처’는 이를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푼 ‘로제타스톤’의 발견에 비유했습니다.게놈 지도는 이제 로제타스톤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알파벳(게놈 지도)까지는알아냈지만 단어의 의미(단백질 형성 조합)를 밝혀내야 하는 거죠.

아무튼 셀레라지노믹스의 추락으로 여전히 돈 버는 기업은 화학 조합으로 약을 만드는 전통 제약회사라네요.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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