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증 환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에 빠진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며 쓰러져 버리기도 하는데 이를 ‘탄력발작’이라고 한다. 이 기이한 병은 1880년 프랑스 의사 겔리노가 처음 발견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롭 슈나이더가 주연한 1999년 코미디 영화 ‘듀스비갈로’에서 아무 때나 잠의 발작에 빠지는 여인을 보았을 것이다.
그 동안 이 괴상한 질환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100년이 넘도록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그 비밀이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밝혀지고 있다.
개나 말 같은 동물 중에도 기면증 증세를 갖는 녀석들이 있다. 1998년 스크립스 연구소의 설클리프 박사는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특정한 신경세포군을 발견하고 이를 히포크레틴이라 명명했다. 바로 이듬해, 다른 의학자들은 대낮에 골아 떨어지는 도베르만 개에서 히포크레틴 수용체에 돌연변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한편 신경의학자 케멜리도 쥐의 히포크레틴 수용체에 인공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더니 탄력발작 증세를 나타낸다고 보고했다. 결국 동물에서는 히포크레틴 수용체의 유전적 이상이 기면증 증세를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도 그럴까.
연구 결과 사람 환자에게는 히포크레틴 수용체의 돌연변이가 없었다. 그러나 환자의 뇌나 척수액 중 히포크레틴이 정상인에 비해 분명히 적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인간 환자에게 있어 유전적 이상은 없지만 히포크레틴의 절대량 부족은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히포크레틴은 수면 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기면증 환자는 이것이 부족하여 낮, 밤을 구분 못하고 수시로 잠에 빠지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히포크레틴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프로비질 같은 약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면증 환자는 드물기 때문에 약효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히프노스의 최대의 수수께끼, 기면증이 최근 불과 몇 년 사이에 거의 풀려가고 있는 것이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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