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우리나라가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무대가 되었을 때 백성들의 불안감이 이러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6·25전쟁으로 한반도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을 때의 불안감은 더 컸을 것이다. 다시 반세기를 보낸 지금 이 나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핵위기는 마치 50년 주기로 자맥질하는 한반도의 운명을 입증이나 하려는 것처럼 불안감을 한껏 키우고 있다.
▼北-美갈등 해법은 북핵 중단▼
그런데 이상하다. 막상 긴장의 당사자들인 미국이나 북한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언급한 적은 없지 않은가. 양쪽은 모두 ‘상대가 이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들만 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대북제재와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북한이 핵을 고집하면’이라는 전제를 분명히 달고 있다. 북한의 핵폭탄과 대륙간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도록 미국이 보고만 있을 리 없다면 이 말은 새삼스러운 전쟁경고가 아니다. 말하자면 북한이 1994년의 약속대로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발전을 지원받는 평화 쪽을 선택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북-미간 싸움을 막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진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도록 말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 책임자들은 자꾸 ‘싸움하지 말라고 미국을 말리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전쟁을 원하는) 미국과 달라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흡사 북측이 언제 서해교전이 있었느냐는 듯이 ‘민족공조!’ 하고 외치니까 남측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의) 공격반대!’라고 화답하는 형국이다. 이런 식의 얘기들을 듣고 있으면 미국은 전쟁을 못해 안달이 난 나라이고 우리 동족 북한은 미국의 협박에 일방적으로 시달리는 가엾은 나라가 된다. 사실인가.
전쟁 난다는데 사람들이 이민은커녕 오히려 나라를 지키겠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전쟁 자체가 아니라 요즘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친북 반미의 이상한 논리를 더 걱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5년이 지났을 때 우리와 미국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남북관계는 어떤 모습이 될지를 국민은 한숨 속에 바라보고 있다. 벌써 미군이 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동족을 돕자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무엇이 북한을 돕는 것인지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어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우리가 미국의 팔다리를 붙들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북한을 돕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이 핵강국이 되어 한국을 포함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평화비용’ 명목으로 돈이나 뜯어먹고 살게 되기를 바라는가.
아니다. 지금 그들이 하는 헛된 짓이 얼마나 소득 없는 일인지를 깨우쳐 주고 대단히 준엄하게 꾸짖는 것이 더 민족주의적인 해법이다. 그래도 안 되면 국제적 제재에 동참해 눈물을 머금고 냉엄하게 함께 매를 드는 것이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길을 거꾸로 가고 있지 않는가.
▼민족위해 北태도 바꾸게 해야▼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할 때 그의 어머니는 “그 애가 자본에 대해 글 쓰는 일을 하지 않고 자본 벌어들이는 일을 했으면 집안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마따나 그렇게 했더라면 마르크스 자신은 물론 지금의 북한도 이토록 비참한 생활은 면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를 추종하다가 다 망하고 유일하게 북한에만 살아있는 공산주의자들이 수십년간 지구상에서 죽인 억울한 인생은 얼마나 많았으며 그들이 인류에 끼친 해악은 얼마나 컸던가. 그런 공산주의 국가를 ‘미제국주의자들의 전쟁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정부까지 나서서 미국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불안한 것은 북한 주민들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한국 국민이 아닐까.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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