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46회…입춘대길(7)

  • 입력 2003년 2월 18일 18시 20분


밀양강에는 살얼음이 얇게 껴 있는데, 삼문동 소나무 숲 언저리에는 물이 졸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꽉 꽉!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소원이가 빠져 죽은 용두목에서 백조 몇 마리가 고개를 하늘로 쭉 뻗어 올리고 꽉! 꽉! 꽉! 물을 차며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뱃머리에서 출렁이는 수면에 어린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한겨울치고는 부드러운 강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늘 가슴에 울화를 품고 있었다. 그 여자하고 만나기 전부터, 그 사람이 시름에 잠겨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사람 안에 웅크리고 있는 어떤 자(者)를 질투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은 아내인 나에게는 아무 것도 털어놓지 않았다.

사공이 삿대질을 늦추자 배가 멈췄다. 우철이 무릎을 꿇고 그 사람이 담겨 있는 하얀 상자 뚜껑을 열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상자를 기울이자, 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바람과 물이 그 사람을 데리고 가고 말았다.

갑자기 목이 메고 숨이 막히고, 그 사람이 죽고서도 한번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사람은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이 땅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이 땅을 찾아온 것도 아니다. 그 사람에게 밀양은 흐르고 흐르던 도중에 어쩌면 들린 타향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 사람의 부탁이 얼마나 애틋하고 간절한 것인지를 알겠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 것이다. 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강바람에 낚싯배가 흔들리고, 그만하면 다 됐지예, 라며 사공이 삿대질을 하려 했다. 잠시만, 잠시만 더, 이 강바람이 잦아들 때까지만 기다려 주이소, 나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나무가 돌이 되도록 목숨하고 복을 지켜 주이소, 다 가져다가 대동강에 풀어놓으이소, 극락 세계에 가서 왕생하이소, 제일 좋은 곳으로 가이소, 그라고, 아이들 고생도 다 가져 가이소.

희향은 고리짝에서 종이가 누렇게 바랜 ‘마의상법(麻衣相法)’과 해진 보따리를 꺼냈다. 그 사람이 밀양으로 흘러들었을 때 갖고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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