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컨테이너박스 갇혀 질식사 당한셈

  • 입력 2003년 2월 18일 18시 33분


화재나 가스유입 등에 대처할 수 있는 국내 지하철의 재해방지 역량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특히 지하철 객차에 대한 국가표준안전 기준이 전무한 상태다. 제일 엄격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방화협회(NFPA) 규정이 있지만 한국은 이보다 허술한 일본의 기준을 따르고 있으며 이마저도 표준 규정이 없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서울 등 국내 지하철의 객차엔 평균 2대의 소화기가 설치돼 있지만 객차당 150여명의 승객 수를 감안할 때 너무 적다. 지하철역에 비상사태에 대비한 방독면은 아예 비치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실태=18일 오후 붐비는 서울 지하철1호선 청량리역. 승강장에는 4개의 소화전이 설치돼 있지만 ‘화재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하겠는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승객이 많았다. 회사원 정혜승씨(24·서울 종로구 명륜동)는 “상상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며 “지하철 안에 있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소화기보다 위력이 몇 배나 센 소화전의 존재는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신도림역에서 탑승한 대학생 전명희씨(24)는 “소화기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승강장에 소화전이 있는 것은 몰랐다”고 말했다. 지하철 객차에는 객차 양끝 쪽 경로우대석 벽에 4.5㎏짜리 분말소화기가 2개 비치돼 있다. 큰불이 났을 경우에는 이 분말소화기로 진화를 한 뒤 지하철 문을 연 다음 터널로 대피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문제점=서울을 비롯해 전국 대도시의 국철과 지하철 역사에는 스프링클러와 화재감지기는 플랫폼에만 있고 철로 위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소방시설이 지하철 역사 안에만 있고 터널 안에는 없는 것도 문제다. 서울지하철공사 조용식(趙容植) 기술자문위원은 “지하철 객차 안에 화재감지기가 없고, 화재가 났을 때 유독성 가스가 흘러나갈 수 있는 환기구가 부족한 것이 대표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하철 좌석의 재질에도 문제가 있다. 현행 어느 법규에도 지하철 좌석이나 내부 마감재에 대한 규정은 없다. 따라서 지하철에서 화재가 나면 ‘컨테이너 박스에 갇혀 질식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하철 역사엔 배기장치와 흡기장치가 2개씩 설치돼 있다. 역사에 유독가스가 들어찼을 때 2개의 배기장치가 이를 배출하는 데 1시간이 걸리고 보통의 경우엔 20∼30분이 걸린다. 그러나 이번 대구지하철 사건처럼 촌각을 다투는 경우에 20∼30분은 승객의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95년 도쿄지하철 역사 안에 독가스 테러가 발생했던 이른바 ‘옴진리교 사건’ 이후 지하철역마다 방독면을 구비하고 있다. 서울지하철의 경우 방독면이나 산소마스크가 전혀 비치돼 있지 않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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