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생명이다]<제2부>물의이용 ④물은 과학이다

  • 입력 2003년 2월 24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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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헨리 8세의 궁전(햄프턴 코트)으로 유명한 런던 서쪽 햄프턴에 위치한 ‘런던 수자원 통제 센터’. 700만 런던 시민이 이용하는 수돗물을 책임지고 있는 이곳에서는 지하 송수망을 비쳐주는 대형 스크린과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물 수요량에 맞춰 100만개에 이르는 밸브를 조작해 수위와 수압, 유속과 유량을 조절한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 작업을 하는 데 16곳의 통제센터와 10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2층 건물의 1층 한쪽에 자리잡은 단 한 곳의 통제센터만 있을 뿐이며 직원도 3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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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를 가져온 핵심은 1994년 완공된 링메인(환상 송수간선)시스템이다. 링메인은 런던 도심의 지하 40∼60m 아래에 환상형으로 구축된 총연장 83 ㎞, 지름 2.5m의 콘크리트 파이프 구조물을 일컫는다. 순환선인 서울지하철 2호선의 평균 깊이가 14.1m, 총연장이 60.2 ㎞라는 점과 비교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런던 도심의 지하 40~60m 아래에 구축된 총연장 83km, 지름 2.5m의 콘크리트 파이프 구조물인 링메인의 내부. 중간중간 밸브를 차단하고 내부를 청소할수도 있다. -사진제공 템스워터 주식회사

런던의 상수도망은 30%가 넘는 누수율로 악명 높았다. 게다가 상수도망이 템스강의 취수장으로부터 동서로 1만4500 ㎞나 뻗어 있어 잦은 보수가 필요하고 전력 낭비를 낳았다. 중간에 송수관이 파열되면 그 뒤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단수가 불가피했다. 또 물을 멀리 보내야하니 곳곳에 펌프장이 필요해 전력 소비도 컸다.

링메인은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환상형으로 연결돼 있어 어느 지점에서나 물이 양 방향으로 공급되다보니 한쪽 방향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쪽에서 물을 공급할 수 있다. 또 지하철 터널보다도 깊게 묻혀 있어 관망이 파손될 위험도 적고 복구공사로 인한 교통혼잡도 피할 수 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데다 지하의 강한 압력 탓에 누수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도심 내 단 12개 펌프장에서 물을 수직으로 끌어올리게 돼 전력 낭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4억달러(약 4800억원)가 투입된 링메인은 런던지역 하루 급수량의 절반가량(13억L)을 공급한다. 리처드 보웬 템스워터 마케팅지원국장은 “링메인은 라운드어바우트(도로의 로터리) 한복판에 자리잡은 공터를 뚫고 공사했기 때문에 공사 중에도 교통체증이 없었다”며 “런던 시민 중 상당수는 아직도 그 존재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링메인이 대도시 송수망의 벤치마킹 대상이라면 이스라엘의 내셔널 워터 캐리어(NWC)시스템은 국가적 차원의 상수도 모델이다. 1964년 건립된 NWC는 제한된 이스라엘의 수자원을 한꺼번에 모아 국토 한복판을 관류하게 만든 대규모 송수망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수원은 크게 3곳이다. 북쪽의 갈릴리호수와 서부 해안 대수층(지하수원), 그리고 동부 산악의 대수층이다. NWC는 이들 3개 수원의 물을 지하송수관과 운하, 저수지, 터널 등을 통해 취합한 ‘인공강’이다. 갈릴리호수의 지표수를 남부 네게브사막으로 흘려보내는 총연장 190㎞, 지름 50㎝의 파이프라인을 주축으로 서부 대수층과 동부 대수층에서 뽑아 올린 지하수가 합류된다.

수량이 연간 10억t(이스라엘 전체 수자원의 절반)에 이르는 NWC는 전자동 통제시스템으로도 유명하다. 전국 7곳의 NWC 통제센터는 지역 단위별 각급 저수지는 물론 작은 우물의 수량까지 모든 수원을 컴퓨터로 모니터해서 필요한 만큼의 물만 정확히 공급한다.

수요량이 많을 때는 NWC의 주 송수관에서 지역별 저수지와 우물 등에 물을 공급하지만 수요량이 적을 때는 반대로 저수지와 우물의 물을 주 송수관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전자동으로 이뤄진다.

광역상수도 따로, 지방상수도 따로, 농업용 저수지 따로 운영되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부러운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런던·에인 쇼멜(이스라엘)=권재현기자

▼다국적 기업 이젠 물도 지배한다▼

미국의 경제지 포천은 2000년 전 세계 물시장의 연간 총수입이 석유시장의 40%에 이르렀다며 ‘20세기 석유의 자리를 21세기에는 물이 대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캐나다 환경론자들은 ‘블루 골드’라는 책에서 물이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상품 또는 서비스로 규정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의 ‘푸른 노다지’로 바뀌어 새로운 골드러시가 일고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생수산업은 물론 수도사업도 민영화 바람 속에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미디어그룹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비벤디 유니버설은 사실 미디어분야 보다는 전력 가스 운송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으로 버는 돈이 더 많다. 물 분야는 SOC사업에서도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비벤디는 프랑스의 또 다른 기업 수에즈와 함께 ‘물시장의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로 불릴 정도다. 비벤디와 수에즈는 2002년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서 각각 51위와 99위를 차지했다. 이는 2001년에 비해 40계단과 19계단씩 상승한 것이다.

유럽 최대의 SOC 업체인 독일 RWE도 물 사업으로 유명하다. 영국 내 최대 민영수도사업체인 템스워터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미국 내 최대 수도사업체인 아메리칸 워터워크스 컴퍼니까지 인수했다.

물과 관련해 수백 개의 특허권과 노하우를 지닌 이들 3개 기업의 수도관련 서비스를 받는 인구는 전세계 150여개국에 걸쳐 3억명이 넘는다. 심지어 한국의 일부 수도사업도 포함된다. 인천시는 지난해 송도 만수지구의 2개 하수종말처리장 건설과 운영권(20년)을 삼성엔지니어링과 손잡은 비벤디에 넘겼다.

다국적 기업이 수도사업을 장악하는 곳에서는 한결같이 수돗물 값이 폭등한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창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수강산의 물을 지키려면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전문가 기고▼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마가 오랫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용수 확보 기술과 전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로마의 수도망은 기원전 312년부터 기원후 538년까지 무려 850년 동안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했다. 목욕문화의 발달로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이 500L나 될 만큼 많았고, 도시발달로 인구가 100만명을 넘었는데도 그토록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할 수 있었다니 감탄할 일이다.

2001년 현재 우리 국민의 87.8%가 로마인처럼 수도망을 통해 생활용수를 공급받고 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로마인들은 수도 이외에도 빗물 저류조와 공동우물을 통합적으로 사용해 여벌의 대안을 확보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상수도의 보급으로 양질의 물을 값싸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우물물이나 빗물 그리고 재처리수는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상수도는 홍수에 취약해 매번 ‘먹는 물’ 난리를 치른다. 또 최근 자주 발생하는 가뭄 때면 제한급수가 반복되고 광역상수도의 주 공급원인 다목적댐마저도 한계를 드러내곤 한다.

우리의 용수공급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최선의 방안은 이스라엘처럼 물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영국처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시공간적으로 수자원 확보에 변동이 많은 우리는 지표수, 지하수 그리고 빗물이나 재이용수 같은 대체 수자원을 통합해서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

또 현재의 167개 시군의 행정단위로 세분된 수도사업을 유역별로 통합해서 관리함으로써 비효율적인 용수공급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김승 수자원프런티어 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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