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남녀 같고도 다른 쇼핑패턴

  • 입력 2003년 3월 1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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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쇼핑 시간이 매우 길고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충동구매를 하며 남성은 목표하는 물건을 향해 곧장 가 그것을 사는 목표구매 성향이 있다.’ 정설로 굳어진 남녀의 쇼핑 패턴이다. 이런 차이를 두고 2001년 독일의 시사지 슈피겔은 재미있는 논문을 소개했다. 원시시대에 특정 사냥감에 집중해야 했던 남성과 딸기를 따러 갔다가도 호두가 있으면 주워야 했던 여성 사이의 성 역할 분담에서 비롯됐다는 것. 확대해석하면 이런 남녀간의 특징은 한국적 현상만이 아닌, 세계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숙명여대 문정숙 교수(소비자경제학)는 “여성은 주위에 신경을 쓰고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남성은 여성보다 의심이 많고 합리적이라는 게 일반론”이라면서도 “요즘은 세대별 차이가 많고 성별뿐 아니라 쇼핑 경험, 소비자 교육 등으로도 쇼핑 행태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남과 여의 서로 다른 쇼핑 패턴을 다각도로 살펴봤다. 매장에서 남녀는 어떻게 다르게 나타날까.》

▽한국인에게도 정설이다=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의 남녀 의류 브랜드 매장 책임자(숍마스터) 20명을 대상으로 고객의 특성에 대해 설문 조사했다. 예상대로 남자 고객은 구매에 ‘신속’했고 여자 고객은 ‘느렸다’. 많은 숍마스터(80%)가 남성 손님의 30% 이상이 오자마자 구매했고 다른 브랜드 옷을 보러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미만에 불과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여성복 숍마스터들은 모두 바로 구매하는 손님은 열에 한두 명뿐이며 90%는 고객이 다시 돌아와 사기까지 보통 2시간이 넘는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한국인 남녀의 쇼핑은 쇼핑시간의 길고 짧음, 물건을 보는 꼼꼼함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렇다면 남자는 목표구매를, 여자는 충동구매를 한다는 것도 맞을까.

▽충동구매는 소비자의 본능일 수도=유통 현장에서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이견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세계 장혜진 과장은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 골프용품, 스포츠용품 등 남자가 관심 있는 품목에서 남성의 충동 구매가 여성보다 훨씬 많다”면서 “여성만 충동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고 단언했다.

실제 계산대 앞 껌과 필름, 건전지 등 가격 저항이 적은 상품들을 ‘충동적’으로 사는 이는 대부분 남자다. 아이와 함께 매장을 온 부부에서 아이의 무차별적 요구 앞에 쉽게 무너지는 이도 아버지일 때가 많다.

백화점 남성정장 매장에서도 혼자 온 남성 고객은 심하게 말하면 ‘봉’이다. 한 백화점 남성정장 판매사원은 “혼자 오는 40대 남성 고객은 정장은 물론 셔츠와 넥타이, 벨트까지 한꺼번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성에 비해 쉽게 물건을 고른다”고 말했다.

물론 남성의 이런 ‘충동 구매’는 다른 유통형태에서는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쇼핑몰이다. 인터넷 쇼핑몰은 가격 비교가 쉽고,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돼 아무래도 감성(感性)보다는 이성적 접근이 쉽다. 때문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남성은 대단히 까다롭다. 인터넷 쇼핑몰 신세계 닷컴에 따르면 남성 고객의 비율은 41.2%인 데 비해 고객 불만 접수 건수 가운데 남성의 비율이 72.3%였다.

▽봄, 가을에 휘둘리는 남녀=남녀의 쇼핑 패턴에서 비교적 차이가 뚜렷한 게 계절 타기. 여심(女心)을 설레게 하는 봄에는 여성 상품이, 남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가을에는 남성 상품이 잘 팔리고 있다.

‘멋쟁이들’의 패션 감각을 먼저 엿볼 수 있는 신상품 반응률은 계절에 앞서 매장에 전시되는 신상품들이 어느 정도 팔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현대백화점이 올 봄 신상품 반응률을 조사해보니 20, 30대 여성이 주 타깃인 여성 캐주얼이 남성 의류보다 훨씬 높았다. 여성 캐주얼에서는 100개의 신상품 가운데 80개 이상이 팔리는 ‘폭발적 반응’이 나온 반면 남성 의류는 절반도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신상품 때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역시 여성 캐주얼의 반응률이 좋았으나 남성의류도 상당한 수준까지 쫓아왔다. 이 백화점 이기용 여성캐주얼팀장은 “20, 30대 여성이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봄, 가을 같으나 가을에는 남성 의류의 추격이 훨씬 뚜렷해진다”고 말했다.

다른 통계에서도 비슷하다. 신세계백화점의 분석 결과 지난해 9∼11월 가을 시즌 동안 신사복 셔츠 넥타이 등 남성 품목의 매출이 큰 폭으로 뛰어 1년 매출의 31∼33%가 이 기간에 이뤄졌다. 모든 상품이 연말로 갈수록 매출이 좋아지는 점을 감안해도 가을철 남성 품목의 매출 신장은 화장품, 액세서리 등의 여성 품목에 비해 두드러졌다. 남성전용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아라미스’의 추민경 과장은 “선물 수요를 제외한다면 본인이 쓰기 위해 화장품을 사는 남자는 가을에 가장 많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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