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끈한 한나라당=한나라당은 아태평화위의 주장을 “정치적 목적에서 꾸며낸 얘기”라고 일축했다. 한나라당이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대북 밀실거래를 비난해 왔고 이회창(李會昌) 전 대통령후보도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지난해 9월 이후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큰 비밀접촉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꼽았다.
윤여준(尹汝雋) 의원은 “이 전 후보의 스타일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고 당 내 대북통인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전혀 모르는 일이다. 만에 하나 추진했더라도 나에게 상의했을 텐데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아태평화위의 발표가 대북 비밀송금 특검제 거부권 행사 시한인 15일을 코앞에 두고 나온 점을 지적하며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북한이 어떻게든 대북 비밀송금 특검제를 무산시키려는 민주당을 돕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재 만난 민주당=한나라당의 대북 비밀송금 특검법 공세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던 민주당은 ‘반전(反轉)’의 호재를 만난 듯 “대북 밀사의 주체와 접촉경로, 의도 등 진상을 공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은 “대북 밀사 보도가 사실이라면 겉으로는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밀실 뒷거래를 시도한 양두구육(羊頭狗肉) 정치다”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대북 제안의 전모 공개를 요구했다.
이날 상임고문 최고위원 연석회의에서도 ‘국기를 뒤흔든 대북 뒷거래’ ‘명백한 범죄행위’ 등 성토가 쏟아졌다. 정대철(鄭大哲) 대표는 “한나라당의 불법적 행위의 실상을 밝힐 계획이다. 관계장관에게 알아보고 관계기구를 동원하면 알 수 있다”며 한나라당이 자진 공개를 거부할 경우 형사고발 등 법적 조치도 불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북한의 의도가 남한 내 국론분열이라면 북한의 말을 그대로 옮겨 야당을 공격하는 것은 집권 여당의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재규 장관 해명과 신동아 인터뷰=월간 ‘신동아’는 3월호에서 북한정보에 정통한 남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한나라당의 이 후보측 밀사가 2002년 9월 이후 평양을 두 차례 방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밀사가 “한나라당의 정책이 나 같은 사람의 노력으로 절대적 상호주의에서 전략적 상호주의로 바뀌었다”고 말했다는 신동아 보도 내용은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한 ‘아태평화위 상보’ 내용과 유사하다.
신동아는 또 “한나라당측 밀사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 후보 주변을 둘러싸 그간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는 대북 발언이 나갔다’고 해명한 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 계속 적대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며 한나라당이 국회도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보다 더 화끈하게 도와줄 것’이라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대북 밀사의 한 사람으로 거명되고 있는 박재규(朴在圭) 전 통일부 장관측은 “북한에 간 것은 사실이나 공개적으로 다녀왔고 밀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국내 상황을 설명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 측근은 “박 전 장관은 지난해 9월16일부터 22일까지 KBS교향악단 남북합동연주회 개최시 고문 자격으로 공개적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방북시 남북장관급회담 카운터 파트였던 전금진(全今振) 북한 내각책임참사 등을 만나 정상회담 이후의 회고 및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주장과 정부 분석=통일부 당국자들은 북한 아태평화위가 갑작스럽게 한나라당과의 비밀접촉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을 주목하면서도 말을 아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동안 김대중 정부의 대북 지원에 대해 ‘퍼주기’ 또는 ‘불투명한 대북정책’ 등으로 비난해온 한나라당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을 부각시켜 한나라당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 북한전문가는 “아태평화위가 ‘한나라당의 밀사 파견 문제는 북남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해 현재로서는 비밀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은 추가 폭로를 할 수도 있다는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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